원문정보
초록
영어
Kim Taek-young(金澤榮 : 1850〜1927) exiled himself from Korea to China in 1905, and settled down at Nantong(南通), nearby Sanghai(上海). He didn't choose Sanghai, where Korean Provisional Government was established several years afterwards, as his place of residence in order to avoid other Korean refugees and Korean merchants. Instead of committing in the front line of independence movement, he wrote Korean histories, and literary works in Chinese character as the service of gratitude to his home country. He wrote several biographies of patriotic martyrs at the fall of Korean Empire, especially he wrote the biography of An Jung-keun(安重根傳) with great effort, because he was struck strongly by An Jung-keun who assassinated Ito Hiro-bumi. At first he used articles of newspapers issued in Sanghai to write the biography in 1910, and he revised the biography twice in 1914 and 1916. Through the revision he corrected errors and elaborated two communicational connections to readers. One of the communicational connections is a realistic one through which the meaning of Ahn's assassination could be communicated to contemporary Korean and Chinese readers, and the solidarity between Korean and Chinese could be strengthened. The other connection is an idealistic one constructed by the narrator and the implied reader in the internal of the biography. Kim Taek-young characterized the narrator as a historian in exile,and the implied reader as an reader in history. The narrator evaluated An Jung-keun as the hero with the indomitable spirit formated in the Confucian tradition. In this way Kim Taek-young tried to make readers in history, which Confucian regards as the last judge, remember An Jung-keun forever.
한국어
창강(滄江) 김택영(金澤榮 : 1850〜1927)은 1905년에 중국으로 망명하여 상해(上海)의 인근 도시인 남통(南通) 에서 한문으로 문필 활동에 종사하였다. 고국의 독립운동의 제1선에 직접 뛰어들지는 않았으나 순난(殉難)한 인물들을 입전(立傳)하는 등 우국(憂國)의 문학 활동에는 헌신적이었다. 특히 동아시아의 국제적 사건이었던 안중근(安重根) 의사(義士)의 의거(義擧)에 감동하여거듭 시(詩)와 문(文 )을 지었으며, 그 중에서도 입전(立傳) 활동에 각별한 관심을 경주하였다. 창강은 1910년 상해에서 발간된 신문 기사들을 바탕으로 <안중근전(安重根傳)>을 지은 이래 이후 2번에 걸쳐 수정과 개작을 하였다. 아울러 1911년에 지은 <안중근외전(安重根外傳)>을 자신의 문집에서 삭제하는 등 안 중근의 형상화에서 뚜렷한 방향 의식을 드러내었다. 사실 관계의 오류를 바로잡는 수정과 함께 안중근이 천주교 신자였던 사실과 중국과 이해관계가 상충되는 간 도(間島) 문제를 삭제하고 안중근이 중국인과 연대하여 일본의 침략에 대응하려 노력한 사실을 추가하는 개작 을 하였다. 사실을 정확히 기록하는 입전 원칙에도 불구하고 천주교 신자였던 사실을 삭제한 것은 안중근의 의거를 유교 가르침의 결과로 보고자 하는 관점 때문이고, 간도 문제를 삭제하고 중국과의 연대를 추구한 사 실을 추가한 것은 중국독자를 의식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수정과 개작은 창강이 <안중근전>의 소통 맥락을 조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즉창강은 현실 소통 맥락 에서는 한국과 중국의 독자들을 동일한 이해관계를 지닌 독자로 설정하여 이들에 대하여 안중근 의거의 의미 를 소통하고, 이를 통해 한․중 연대(韓中連帶) 의식을 형성하고자 했다. 그러나 창강은 보다 근본적으로는 유 교 문화권에서 이념적으로 설정하는역사의 흐름 속에 안중근의 위대한 정신을 기록하고 기억하게 하고자 했 다. 즉 창강은 ‘유민사관(遺民史官)’이라 할 수 있는 서술자가 미래의 ‘역사의 독자’에게 유학의 정신이 탄생시 킨 위대한 인물인 안중근의 불굴의 정신을 소통하고자 한 것이다
목차
1. 머리말
2. 창강(滄江)의 「안중근전」 입전과 개작 과정
3. 창강의 안중근 입전(立傳)에서의 소통 맥락 설정과 그 지향점
4. 결론
참고문헌
Abstra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