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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9세기 정월 세시풍속에 보이는 동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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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ins in January's seasonal customs from 18th centuty to19th century

조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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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한국어

8~19세기를 살았던 우리 조상들의 소원은 돈 귀신과 사귀고 싶다거나 배불리 먹고 돈 많이 버는 것이었다. 우 리들이 흔히 하는 푸념과 같다. 이렇듯 연말연시 소원이었던 동전은 조금만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도 그 위상 이 상당히 초라해진다. 동전 유통정책은 고려부터 칠백 년 동안 번번이 실패하여 동전은 쌀과 베에 밀려 화폐 로서의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였다. 동전은 창고에 쌓이거나 다른 용도로 쓰이기 위해 녹여지는 일도 흔했다. 쌀과 베에서 동전으로의 변화는 정치와 경제 뿐 아니라 사회가 크게 달라지고 있음을 의미했다. 동전을 유통 시키기 위한 정부의 강력한 의지와 농업, 상공업, 광업 등의 발달로 화폐유통이 추진력을 얻으면서 동전은 우 리 조상들이 갈망의 대상이었고 신분 상승의 도구였다. 오랜 세월동안 별 쓸모가 없었던 동전이 조선후기부터 커다란 힘을 발휘하게 되면서 세시풍속에 반영되기에 이르렀다. 사회변화가 세시풍속으로 정착하는데 오랜 시간이 소요되지만 일단 정착되면 쉽게 변하지 않는 속 성을 지녔다. 일 년 중 정월의 세시풍속이 가장 중요했다. 이러한 정월 세시풍속에 동전이 출현한 것만으로도 조선후기 사회에 동전이 끼친 영향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 짐작하게 한다. 동전이 정월 행사에 등장한 것이 설날의 떡국 먹기, 덕담, 법고였고 정월대보름의 적선, 제웅치기, 호로버리기 , 돈치기였다. 돈 걱정 없이 살고 싶은 소망이 덕담과 법고로 나타났다. 또한 동전은 풍년을 기원하는 마을행 사 위주인 정월대보름에도 가족을 위한 주술적 용도로 사용되었다. 제웅치기를 통해 주술적인 부분으로 확대 된 동전의 힘을 확인했다. 제웅치기는 가족의 액막이를 위해 일반적으로 행하여졌는데, 이전에 제웅 속에 넣 던 쌀, 음식이 동전으로 대체되었다. 가난한 집은 사기로 동전 모양을 깎아서 제웅 속에 넣었을 정도였다. 어 린이를 위한 액막이로 호로버리기를 했고 어른과 아이가 섞여 돈치기도 했다. 세시풍속에서 보이는 동전은 정월 한 달 기간 동안에 집중적으로 나타났다. 또한 동전은 기복, 액막이를 주목 적으로 가정 내의 행사에 머물렀을 뿐 그 이상의 범위로 확대되지 않았다. 18∼19세기 동안 동전이 나타나는 세시풍속은 그 수가 조금씩 증가하다가 20세기 이후에는 점차 축소되어 갔다.

목차

국문초록
 Ⅰ.머리말
 Ⅱ.상평통보 등장 이전과 이후
 Ⅲ.동전이 보이는 설 행사
 Ⅳ.동전이 보이는 정월대보름 행사
 Ⅴ.정월 세시풍속에 보이는 동전의 의미
 Ⅵ.맺는말
 참고문헌
 Abstract

저자정보

  • 조한정 Cho, Han-jung. 인하대학교 박사과정 수료, 현 인천후정초등학교 근무.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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