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정보
Gisaminjeolrok(己巳愍節錄)」 ConsiderationⅠ
초록
영어
The purpose of this study was to grasp the value and significance of the public record and the private record by examining the contents of public and private records, which are the contemporary documentaries, by having the first volume of 「Gisaminjeolrok(己巳愍節錄)」, which was reported in Jeongjae Park Tae-bo's Jeongjaehujip(定齋後集), as the text. A conflict between the Queen Inhyeon Wanghu(仁顯王后) and Jang Huibin(The Concubine Jang), which became a misfortune of power struggle for a faction in 1689, became the flying sparks even into the issue of deposing the Queen Inhyeon Wanghu by all means, thereby having caused the great revolution called Gisahwanguk(己巳換局). Park Tae-bo wrote
한국어
이 연구는 정재 박태보의 정재후집 에 실린 「기사민절록(己巳愍節錄)」 상(上)을 텍스트로 당 대 기록물인 공적 사적 기록의 내용을 살펴 공적 기록과 사적 기록의 가치와 의미를 파악하고자 하였다. 1689년 붕당의 세력 다툼의 기화가 된 인현왕후와 숙원 장씨의 갈등은 기어이 인현왕후의 폐비 문제로까지 비화되었다. 이러한 혼전의 양상이 격해지자 국가의 기반이 되는 윤리와 도덕, 의리와 절개를 흔들 것임을 걱정한 나머지 산관(散官) 80명을 대표하여 숙종의 마음을 돌리고자 박태보가 <진신소>를 집필하였다. 「기사민절록」 상․하(上·下)의 기사는 총 36편인데 이 연구에서는 「기사민절록」 상의 <대유생소(代 儒生䟽)>, <진신소(縉紳䟽)>, <정원일기(政院日記)>, <금부문안(禁府文案)>, <비망기(備忘記) >, <소차(䟽箚)>, <기사록(己巳錄)> 등을 살펴 당시 실상을 파악하였다. 아울러 기사환국의 부당 함을 바라보는 집필자 박태보의 시선, 승정원과 의금부의 태도, 숙종의 분기(憤氣), 관료들의 시각 등을 고찰하였다. 본 연구에서는 「기사민절록」이라는 제목에서도 보여지듯이 박태보를 기리는 마음은 절개에서 비 롯되었음을 파악하고, 그의 행실이 유교에 바탕을 둔 의리, 도덕, 윤리의 옳음에 따라 간언하는 것 이었으며, 그것이 군주에 대한 충심이고 절개였음을 밝혔다. 그의 사상적 기반이 되었던 유교 윤 리인 군신 간의 신의와 부부 간의 의리에 기반을 둔 간언이었을 뿐, 그가 붕당을 위해 사사로이 목 숨을 바친 것이 아니었음을 밝히는 작업이었다. 「기사민절록」에서 보여주는 여러 정황은 정치인 이 나아갈 방향과 지향해야 할 지표의 시금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목차
1. 서론
2. 「기사민절록(己巳愍節錄)」의 구성
3. <기사록(己巳錄)>과 상소문의 의미
4. <정원일기(政院日記)>와 <금부문안(禁府文案)>에 나타난 실상
5. 친국(親鞫) 이후의 공적 기록, 비망기(備忘記)와 소차(疏箚)
6. 결론
<참고 문헌>
Abstra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