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정보
Seogye Park Sedang's recognition of Buddhism and poetics
서계 박세당의 불교인식과 시세계
초록
영어
Park Sedang's negative opinion about Buddhism recognizes that while this paper is to review the. Park Sedang a thinker and a poet acknowledged the fact that between Confucianism and Buddhism through Revealing the purpose. Focussed on how to deal with from studying two should say how he had rejected Buddhism based on the "Nonhangubaebudo[論韓歐排浮屠]". Therefore do not think that is ordained in order to reject Buddhism. Just the two of Buddhism severe that the odor would only Park Sedang rather than personal opinion, this time, Buddhism in a general and universal view, I think. Also "chukgyo「竺敎」" Park Sedang fundamental doctrine of Buddhism, and a better understanding of the poem showing representative. Were identified as ever exposed poetic appreciation for their heroic acts towards enlightenment monk. Park Sedang recognition of Buddhism was amicable. Look at the fact that he Confucianism and Buddhism through the 55 poems related to Buddhism This is his legacy becomes even more evident. Park Sedang suraksan[水落山] seokcheondong[石泉洞] hiding sought to venerate Kim Siseup of living. It looked to receive Kim Siseup of life and the philosophy of Confucianism, Taoism, Buddhism, and all through his Is also often cited between Confucianism and Buddhism through a typical case of 'Hogyesamso[虎溪三笑]」' Hyewon Buddhist priest fables. Encountering situations such as the contemporary Hyewon Buddhist priest[惠遠法師]. This Park Sedang their continued acquaintance Buddhist monks and have entered into a relationship thinking that showed Park Sedang Confucians. Nevertheless, he does not insist study to embrace Buddhism until tolerant attitude to the Noja[老子] and Jangja[莊子] vs. He is open- minded, flexible and you've got to think.
한국어
본고는 그 동안 西溪 朴世堂(1629~1703)의 불교인식에 대한 부정적 견해를 다시 검토하여 그가 儒 佛 會通에 지향점을 둔 사상가이자 시인임을 밝히려는 것에 목적이 있다. 그의 排佛論의 주요 근거 로 삼았던 「論韓歐排浮屠」는 儒學에서 異端에 대한 대처방법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排佛의 旗幟를 위해 세운 것은 아니라고 보았다. 다만 유학에서 말하는 異端 중에서 불교는 그중 악취가 심한 것이 라고 했을 뿐, 이는 西溪 개인의 의견이라기보다는 당시 유학자가 바라보는 불교에 대한 일반적인 견해라고 생각한다. 또한 「竺敎」라는 시는 西溪가 불교의 근본교리를 잘 이해하고 있으며, 역대 祖 師와 禪師들의 깨달음을 향한 영웅적인 행위에 대한 시적 감상을 드러낸 것으로 파악하였다. 西溪의 불교인식은 우호적이었으며, 그가 남긴 불교관련 55편의 시세계를 조명해볼 때 그가 儒佛 會通 지향에 있음은 더욱 분명해진다. 西溪는 漢陽 郊外 水落山 石泉洞에 은거하면서 梅月堂 金時 習의 追崇하고 宣揚하려고 노력하였으며, 이는 西溪가 매월당의 삶을 동경하고 儒佛仙 三敎를 會通 한 그의 사상을 본받고자 하는 한 것으로 보았다. 또한 儒佛 會通의 대표적인 사례인 東晉 때의 惠 遠法師의 ‘虎溪三笑’ 고사성어를 자주 인용하면서 자신이 佛僧과의 지속적인 교유관계는 惠遠法師 가 당대에 처했던 상황과 동일시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西溪 박세당은 유학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西溪는 유학만을 고집하지 않고 老莊은 물론 불교까 지 포용하는 관용적인 태도로 대했다. 이는 그가 유연하고 개방적인 사고를 지녔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목차
1. 머리말
2. 서계의 불교인식 재검토
3. 불교인식의 시세계
1) 梅月堂金時習의 삶 동경
2) 虎溪三笑의 儒佛 會通 指向
4. 맺음말
<참고 문헌>
Abstra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