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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3년 辨誣解決過程으로 본 李尙迪의 눈물 — <孔君顧廬(憲庚), 紀余去年奉使進表辨誣事一冊, 王子梅爲之付梓, 見寄數十部, 志謝有作.>를 중심으로 —

원문정보

The Tears of Lee Sang-jeok(李尙迪) Understood through the Resolution Process of Byeonmu(辨誣) in 1863

1863년 변무 해결 과정으로 본 이상적의 눈물 — <공군고려(헌경), 기여거년봉사진표변무사일책, 왕자매위지부재, 견기수십부, 지사유작.>를 중심으로 —

정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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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영어

In Beijing, Lee Sang-jeok spent his own money to publish Eunsongdangjip(恩誦堂集) and Eunsongdangsokjip(恩誦堂續集), which consist of 20 volumes of poetry and 4 volumes of prose. The investigator focused on the last work in the 20 volumes of poetry in that it was his "last work." The significance of "last" comes from the fact the writer sorts out his or her life in his or her last and most important work. The last work of a writer thus offers some critical clues for the readers to reflect on his or her life. The purpose and direction of this study was to investigate the life of Lee Sang-jeok, his roles and status as a translator, and his characteristics as a poet by reading his last work. His last work, whose title is very long, can be interpreted only by understanding its historical background called the Byeonmu Event related to the royal family those days. The study had to provide additional explanations about many historical events and concerned figures for the interpretation of the poem. Lee played a tremendous role in the successful resolution of the Byeonmu Event related to the poem. He took advantage of many of his friends he made making a trip to Beijing ten times and especially Gongheoni(孔憲彛) working for the cabinet that time to move the Gijunjo(祁寯藻) Ministerk and receive tenets from the emperor. Even though he was recognized and praised in many aspects in China, he was nothing but a translator in the Jungin(中人) class in Joseon(朝鮮) and received poor treatments that did not correspond with his successful performance. He described what he felt about his situation by saying "Tears are trickling down from my eyes" in the last phrase of the poem. His tears were to appreciate his friends in China on the surface, but they reflected how disappointed he was with Joseon on the inside.

한국어

본고는 이상적의 마지막 작품을 분석하여 그 의미를 도출하는 것을 목적으로, 1863년 변무사행과 이상적의 역할을 살펴본 것이다. 1863년의 변무사행은 정원경이 쓴 『이십일사약편』에 조선국왕의 종계를 잘못 기록했기 때문이다. 정원경은 『이십일사약편』에서 이성계를 이인임의 아들로 적고 이성계가 우왕을 시해하고 왕위를 찬탈했다고 기록하였다. 이에 철종은 진주사를 청나라에 파견하게 되는데, 이상적은 진주사의 역관으로 참여하여 사신단의 역할에 충실하는 한편, 개인적인 친분관계에 있던 공헌이, 정공수, 기준조를 움직여 변무를 신속하게 해결하는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철종도 의아할 정도로 신속하게 해결을 본 종계변무는 三使를 중심으로만 그 공로가 인정받게 된다. 정작 신속한 변무해결의 중심적인 역할을 했던 이상적은 그 어떤 기록에도 치하된 내용이 없었다. 이에 이상적은 생애 마지막 작품인 <孔君顧廬(憲庚), 紀余去年奉使進表辨誣事一冊, 王子梅爲之付梓, 見寄數十部, 志謝有作.>를 통해 그 때의 일을 회고하며 자신의 소회를 밝혔다. 이상적은 마지막 작품에서 중국 정사와는 달리 조선국왕의 종계에 대해 오류를 적고 있는 정원경의 『이십일사약편』을 ‘천박한 학자의 왜곡된 붓’이라며 강하게 비판하였다. 또한 변무해결의 주역으로 자신을 중심으로 기사를 쓴 공헌경의 『고려기사』를 앞 시대 변무 기록인 왕사정의 『지북우담』으로, 변무를 해결하고 돌아가는 자신에게 써 준 왕헌성, 황운곡, 왕헌의 증시를 앞 시대 마유명의 증시로 빗대었다. 그러면서 이상적은 중국 지인들이 자신에게 과분한 칭찬을 해주었다고 눈물을 흘리며 고마움을 나타내었는데, 이는 단순히 고마움의 눈물이 아니라 자신의 능력을 인정해준 중국 지인들에 대한 고마움의 눈물로, 이면적으로는 조선에서 중인으로 차별받으며 살아야 했던 이상적의 서러운 삶을 함축하는 것이었다

목차

<논문 요약>
 Ⅰ. 序言
 Ⅱ. 1863년 辨誣使行과 李尙迪의 役割
 Ⅲ. 李尙迪의 마지막 작품과 그 意味
 Ⅳ. 結語
 <참고 문헌>
 Abstract

저자정보

  • 정후수 Chaung Hoo Soo. 한성대학교 한국어문학부 교수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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