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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7세기 관요 백자 명문의 변화와 그 배경

원문정보

Transition in the Inscriptions Used on White Porcelain Produced in the Royal Kilns during the 15th to 17th Centuries

김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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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영어

The royal kilns were set up under the auspices of the Saongwon (司饔院) in order to exclusively produce white porcelain used by the royal family. Following the establishment in 1467 of the royal kiln at Gwangju, Gyeonggi province, the production of white porcelain for the royal family was incorporated into the state run crafts production system. Inscriptions comprising the characters ‘cheon (天), ji (地), hyeon (玄), hwang (黃)’ or ‘left (左), right (右) (+ kanji (sexagenary cycle, 干支) characters and a number)’ were used on white porcelain produced at the royal kilns for a certain period of time, but then gradually went out of use. This paper examines how these inscriptions were made, changed and went out of use from a historical perspective. First, ‘天·地·玄·黃’ inscriptions were made on white porcelains produced in the royal kilns from 1467, when the kilns were first established, to the 1560s. In the Joseon period, such characters were used to make classifications according to certain categories. Thus, it is assumed that ‘天·地·玄·黃’ came to be used because the Saongwon wished to establish a unity in the production, inventory, receipt of delivery and distribution of the white porcelain. Second, ‘左·右’ inscriptions were used from the 1560s to 1690s. Kanji characters were later added at around 1606, and numbers came to be added gradually in 1626~1627. ‘左·右’ indicated which team had made the porcelain, the kanji characters marked the year of manufacture, and the numbers indicated the month and day of manufacture. In other words, these inscriptions contained information about the production of the white porcelain. The transition in the nature of inscriptions used on the white porcelain, from ‘天·地·玄·黃’ to ‘左·右’, was closely related to the management of the royal kilns. As many problems began to appear in the management of the royal kilns, the government strengthened management at the production stage in order to clarify responsibilities. This led to the gradual use of the ‘左·右 (+ kanji characters and number)’ inscriptions. Finally, ‘左·右’ inscriptions no longer appear on white porcelain from the 1690s. This seems to have been caused by an improvement in the quality of the porcelain and a change in the management of the royal kiln, which shifted from a state run to privately run crafts production system. Thus, with the strengthened supervision of the royal kilns, they were able to ease regulations on the 左 and 右 production teams, causing the inscriptions to gradually disappear.

한국어

官窯는 司饔院의 分院으로 왕실에서 사용하는 백자의 제작을 전담하였다. 1467년을 전후하여 경기도 광주에 관요가 설치되면서 왕실용 백자의 제작은 관영 수공업 체제로 편입되었다. 관요가 설치된 이후 17세기까지 관요에서 제작된 백자에는 ‘天·地·玄·黃’銘, ‘左·右(+干支+숫자)銘’ 등의 명문이 일정기간 동안 표기되다가 소멸된다. 이 논문에서는 이러한 명문이 표기·변화·소멸되는 과정을 당시의 역사적 배경 속에서 설명하고자 하였다. 먼저 <‘天·地·玄·黃’銘白磁>는 관요가 설치된 1467년경부터 1560년대까지 제작되었다. ‘天·地·玄·黃’의 명문체계는 천자문 자호의 순서를 이용한 것으로, 이는 조선시대에 일정한 기준으로 무엇을 구분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백자에 표기된 ‘天·地·玄·黃’銘도 司饔院에서 왕실용 백자의 제작·수납·출납을 일원적으로 담당하게 되면서, 이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고자 표기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다음으로 <‘左·右’銘白磁>는 1560년대부터 1690년대까지 제작되었다. 그리고 1606년부터는 ‘左·右’銘에 干支가, 1626∼1627년부터는 숫자가 차례로 부가되었다. ‘左·右’銘은 백자의 제작분반, ‘干支’는 제작년도, ‘숫자’는 제작월일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들 은 백자의 제작에 관한 정보를 담고 있다. 관요 백자의 명문이 ‘天·地·玄·黃’銘에서 ‘左·右’銘으로 변화되는 것은 관요의 운영상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즉, 조선 정부는 관요의 운영에 문제가 발생하자 백자의 제작단계에서의 책임소재를 명확히 구분하는 방향으로 관요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左·右, ‘干支’, ‘숫자’가 순차적으로 표기되었다. 마지막으로 <‘左·右’銘白磁>는 1690년대를 기점으로 더 이상 확인되지 않는다. 17세기 후반 백자의 품질이 향상되고, 관요에 민간 수공업적 요소가 공식적으로 수용되면서 관요의 운영체제에 변화가 발생하였다. 이는 1560년대 이후 강화되었던 관요에 대한 관리·감독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고, 이에 따라 ‘左·右’銘이 소멸되는 것으로 판단되었다.

목차

국문초록
 I. 머리말
 II. 명문의 양상과 특징
  1. '天ㆍ地ㆍ玄ㆍ黃'銘
  2. '左ㆍ右'銘
 III. 명문의 변화 배경
  1. 관요의 설치와 명문의 표기
  2. 관요에 대한 감독 강화와 명문의 변화
  3. 관요 운영체제의 변화와 명문의 소멸
 VI. 맺는말
 참고문헌
 Abstract

저자정보

  • 김귀한 Kim Kwihan. (재)한국문화유산연구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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