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平頂山 유적과 西周시대의 應侯

원문정보

Pingdingsan site and Yinghou in the period of Western Zhou Dynasty

평정산 유적과 서주시대의 응후

김정열

숭실사학회 숭실사학 제30집 2013.06 pp.317-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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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영어

Recently, the report on Pingdingshan site was published. It charted the tomb of Yinghou in the period of Western Zhou Dynasty and its excavated texts, which discovered in the Pingding city, south-west Henan. Yinghou was one of the Chinese Feudal lords, that is, feudalized duke of Zhou, and remained his records in Zuo Zhuan. It was argued that Yinghou existed actually since the his ritual vessel survived from a world. Then, the tomb of Yinghou was recently excavated in Pingding city, in where excavated or robbed relics greatly discovered and voluminous materials on the Yinghou was secured. There is not much to have voluminous materials among these tombs of the Chinese feudal lords, excavated by this time, in the period of Western Zhou Dynasty. Moreover it was an rare case that the several generation of tombs of Chinese feudal lords located in the sequence of time coordinate were verified on the specific spatial coordinate and the many of relics was excavated in those tombs. Therefore, the Pingdingshan site was rare material to understand diachronically presence aspect of Chinese feudal lord in the period of Western Zhou dynasty. This paper aimed to understand the function and character of the contemporary Chinese feudal lord through using these materials excavated in Pingdingshan site and considering over the several problems in the period of Western Zhou dynasty. The tomb excavated in Pingdingshan site had typical features of funeral culture in Zhou. Therefore, the literature historical material which recorded Yinghou was one of the Zhou dynasty, seem to be true. But there is room for reconsideration about traditional ideal that Yinghou was feudalized in Pingdibgshan in the former part of Western Zhou dynasty. Because given their qualities of forms, the relics excavated in this tomb were difficulty to relate back to beyond the transition from early to middle period of Western Zhou dynasty. Therefore, It is reasonable to decide the first time of his entering this region to early-mid period of Western Zhou Dynasty when Zhou dynasty took off its cost to manage southern region. The inscription of ritual vessel excavated in Pingdingshan site involved the material which allowed us to grasp the activities of Yinghou in the period of Western Zhou dynasty. From this, after the middle of the period of Western Zhou dynasty, when he feudalized in Pingdingshan, he carry out his duties to manage southern region faithfully and continued his duties in the latter part of the Western Zhou dynasty, impending collapse of its dynasty. According to general idea, after the middle of Western Zhou dynasty, the relationship between dynasty and feudal lord became alienated and the control power on the local of dynasty was incapacitated because Chinese Feudal lords settled in each region became the local gentries, in the end led to dissolution of Western Zhou. In the case of Yinghou, however, it is difficult to find these ‘general’ phenomena. Giving consideration to inscription of ritual vessel related to Yinghou, the Zhou dynasty was never lost control over Yinghou from feudalizing Yinghou as a strategic reference of managing southern region to latter period when its dynasty collapsed. Was the presence aspect of Chinese Feudal lords in Wetern Zhou dynasty which was found in Yinghou limited merely in Yinghou as relativelty particular situation? Otherwise, is it requested the consideration on the historical change of characters over Chinese feudal lord in Western Zhou dynasty? They are the themes which we should pay attention.

한국어

최근 平頂山 유적 발굴보고서가 발간되었다. 이 보고서는 河南 서남부 平頂山市 경내에서 발견된 서주 ‘應侯墓地’와 그 출토자료를 정리한 것이다. 應侯는 周公이 封建한 제후 가운데 하나로 『左傳』에 관련 기록이 남아 있다. 뿐만 아니라 일찍부터 응후에 관련된 청동 예기가 세상에 유전되어 왔으므로 서주시대에 응후가 실제 존재한 것은 사실로서 신뢰되어 왔다. 그러다가 최근 ‘應侯墓地’가 平頂山市에서 확인되고, 그곳에서 발굴되거나 혹은 도굴된 유물들이 대거 소개되어 응후에 대한 보다 풍부한 자료가 확보되기에 이른 것이다. 지금까지 발굴 조사된 서주시대 제후의 묘지 가운데 이처럼 풍부한 자료를 전하는 것은 많지 않다. 게다가 연속되는 시간 좌표 위에 위치하는 수대의 제후 무덤이 특정한 공간 좌표 위에서 확인되고 거기에서 상당량의 유물이 출토된 사례는 매우 드문 사례이다. 때문에 평정산 유적은 서주시대 제후의 존재 양상을 통시적이며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희귀한 자료이다. 이 논문에서는 이와 같은 평정산 유적 출토 자료의 장점을 충분히 활용하면서, 서주시대 應侯에 관련된 몇 가지 문제를 고찰하고, 그것을 동 시대 제후의 기능 및 성격을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초석으로 삼기 위해 작성되었다. 평정산 유적에서 발견된 무덤은 周系 喪葬禮俗의 전형적인 특징을 골고루 갖추고 있다. 따라서 응후가 주 왕실의 일족에서 나왔다는 문헌사료의 기록은 정확하다고 생각된다. 다만 응후가 서주 전기에 지금의 평정산 일대에 封建되었다는 전통적인 이해는 재고의 여지가 있다. 왜냐하면 무덤에서 출토되는 유물은 그 형태에 나타나는 여러 가지 속성으로 미루어 보아 일러도 서주 전ㆍ중기의 과도기 이상으로 소급되기는 어렵다. 따라서 응후가 이 지역에 최초로 입식한 시기는 대개 주 왕실이 남방 경영에 본격적으로 착수하기 시작한 서주 중기의 이른 단계로 설정하는 것이 타당하다. 평정산 유적에서는 출토된 청동기 명문에는 서주시대 응후의 활동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가 포함되어 있다. 그에 따르면 응후는 평정산에 봉건된 서주 중기 이래 주 왕실의 남방 경략을 충실히 수행하였으며 이 역할은 서주 왕실의 몰락에 임박한 서주 후기까지 지속되었다. 일반적인 이해에 따르면, 서주 중기 이래 왕실과 제후의 관계가 점차 소원해지고, 각 지역에 정착한 제후는 한층 더 재지세력화 됨에 따라 왕실의 지방 통제가 무력화되며, 그것은 이윽고 서주 국가의 해체로 이어졌다. 그러나 적어도 응후의 경우에서는 그와 같은 ‘보편적인’ 현상을 찾아보기 어렵다. 응후 관련 청동 예기 명문이 전하는 정보를 검토하면, 주 왕실은 남방 경략의 거점으로 응후를 封建한 그때부터 몰락에 이르는 후기까지 그에 대한 통제력을 잃지 않았다. 應侯에게서 관찰되는 서주시대 제후의 존재 양상이 應에게만 국한되는 비교적 특수한 경우일까? 아니면 서주 제후의 성격에 나타나는 역사적 성격 변화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를 요구하는 것일까? 앞으로 주목해 보아야 할 과제이다.

목차

I. 머리말
 II. 묘지 개황
 III. 매장문화의 특징과 초기무덤의 연대
  1. 무덤의 구조와 부장품
  2. 초기 무덤의 편년
 IV. 應侯의 봉건과 그 기능
  1. 봉지의 初對 연대
  2. 應族와 南夷
  3. 사회적 관계의 양상
 V.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저자정보

  • 김정열 Kim, Jeong Ryeol. 숭실대 사학과 교수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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