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정보
A Study on the Cheoyong-mu in the Era of King Cheol-jong
초록
영어
In this article, I analyzed Jeonsa-nyeon Jeongjae Mudo Hol-gi (丁巳年 呈才舞圖笏 記) made during King Cheol-jong times and made a consideration on the change of dancing orders, instrumental accompaniment compared with Akhakgwebeom (樂學軌範). In the (Jeonsa-nyeon) Jeongjae Mudo Hol-gi (丁巳年) 呈才舞圖笏記, the order of Cheoyong-mu was written as following : hoemu (回舞) → juseon (周旋) → ilhwi (一揮) → obangg deamu (五方對舞) → jehaeng (齊行) → deamu (對舞) → useon (右旋). The sequence of Dancing formation proceeded as following circulation structure : hoemu formation (回舞隊形) → ilnyeol formation (一列隊形) → obangg formation (五方隊形) → ilnyeol formation (一列隊形) → hoemu formation (回舞 隊形). In those formation, obangg formation (五方隊形) as the core sequence was composed of chodea-mu(初對舞) and sangdae-mu(相對舞) dancing by yellow Cheoyong(黃處容). Comparing with Akhakgwebeom (樂學軌範), I could find continuing and changing points of Cheoyong-mu since the early Joseon period. And in the late Joseon, there were 2 changes of Cheoyong-mu, firstly, the change was appeared between Era of King Yeong-jo(英祖代) and Era of King Jeong-jo(正祖代). Secondly, during Era of King Go-jong(高宗代), Cheoyong-mu was hardly find to be performed. Later, I will make a research on the reason of those changes.
한국어
그동안 처용무는 그 춤의 실체에 다가갈 수 있는 무보가 소략하여 단편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었다. (정사년) 정재무도홀기는 철종대 처용무의 연행모습을 새롭게 조명할 수 있는 기록물이다. 이 글에서는 (정사년) 정재무도홀기에 수록된 처용무를 분석하고, 이를 악학궤범과 비교하여 춤 절차 및 반주음악 등에 어떠한 변화가 나타났는지 확인하 였다. 아울러 조선후기에 처용무에 나타난 변화를 검토하고 그 원인을 추론하였다. 정사년 홀기의 처용무 춤 순서는 회무(回舞)→주선(周旋)→일휘(一揮)→오방대무 →제행(齊行)→대무→우선(右旋)의 순으로 진행되었다. 이 순서는 두 번째 절차가 주 선과 대무로 차이를 보이는 점만 제외하면, 회무(回舞)→대무(對舞)→오방삼진작대검 무(五方三進作隊劍舞)→대무→회무의 순으로 기술한 증보문헌비고의 처용무와 대체로 일치하는 순서였 다. 그리고 처용무의 춤 대형은 회무대형→일렬대형→오방대형→ 일렬대형→회무대형으로 진행하는 순환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여기서 가장 핵심적인 대 형은 오방대형이었는데, 황처용이 흑․청․홍․백 순서로 초대무(初對舞)를 추고, 다 시 상대무를 추는 동작으로 이루어졌다. 악학궤범과 정사년 홀기의 처용무를 비교한 결과, 조선전기와 철종대 처용무의 핵 심 춤 동작인 회무와 오방대무 등은 그대로 전승되었으며, 각 동작의 순서나 내용에는 축소 및 탈락의 재편과정이 나타났다. 조선전기와 철종대 처용무 모두 시작과 마무리 동 작으로 회무 혹은 회선을 사용하였으며, 특히 입장할 때는 왼쪽으로 회무하였다. 각 처 용이 오방대형을 만들어 황처용을 중심으로 대무하는 동작 역시 조선전기에서 철종대까 지 꾸준히 계승된 처용무의 핵심동작으로 파악되었다. 반면에 무룹디피무, 홍정도돔무, 정읍무, 환장무 등은 철종대 처용무에서 대응되는 춤동작을 찾기 어려웠다. 조선전기와 철종대 처용무의 반주음악은 <정읍>이 유일하게 공통으로 쓰인 반주음악이었으며, 철종 대에는 <여민락령>, <향당교주>, <미후사> 등의 곡으로 바뀌었음을 확인하였다. 조선후기의 궁중 연향에서 나타나는 처용무의 연행양상에는 두 가지 변화가 따랐다. 첫 번째는 처용무가 영조대까지 마지막 작의 진대선 이후에 파연무로 연행되었으나 정조 대 이후 연향 절차에 변화가 생기면서 진대선 절차와의 상관성이 약화되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처용무가 대체로 연향의 후반부에서 공연되었다는 점은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 었다. 두 번째로 고종대 연향에서 처용무가 연행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고종대 연향에 는 어느 시기보다 다양한 정재가 공연되었다는 점에서 그 이유를 밝히는 작업은 추후 과 제로 남겨두었다.
목차
1. 머리말
2. 철종대 『(정사년) 정재무도홀기』의 처용무
3. 조선조 처용무 무보 비교
4. 조선후기 처용무 연행양상의 변화
5.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키워드
저자정보
참고문헌
- 1『世宗實錄』.
- 2『樂學軌範』, 한국음악학자료총서 26, 서울 : 국립국악원, 1988.
- 3『園幸乙卯整理儀軌』.
- 4『呈才舞圖笏記』, 한국음악학자료총서 4, 서울 : 국립국악원, 1980.
- 5『呈才舞圖笏記』, 한국학자료총서 1, 성남 :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4.
- 6『增補文獻備考』 권105.
- 7『哲宗實錄』.
- 8『通明殿進饌時儀註唱詞回舞圖』, 규장각 청구기호 古 5120 82.
- 9김상보, “20세기 조선왕조 궁중연향 음식문화”, 『조선후기 궁중연향문화』 권3, 서울: 민속원, 2005.
- 10김영봉, “조선조 의궤에 나타난 연례악의 변천”, 서울 : 서울대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19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