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정보
A Meaning and Historicity Included in the Songs, Dances, and Musics of Mugo Jeongjae
초록
영어
The aim of this study is to investigate the meaning and historicity included in the songs, dances, and music of performing court dance called as Jeongjae(呈才). Especially the drum dance called as Mugo becomes the research object. Mugo was most popular Jeongjae. The scope of time period for this research is from Goryeo to Imperial Taehan (大韓帝國). The research objective is GoryeosaAkji(『高麗史樂志』), Akhakgwebeom(『樂學軌範』), all of source materials from official record of court event called Uigwe (儀軌), Jeongjae Mudo Holgi (『呈才舞圖笏記』) and many literary works. Drum and mugo were produced by Yihon in the Gyeongsangbuk-do Yeonghae, during the Goryo Dynasty. Mugo dance seemed butterflies wavering over flowers, dragons were jostling for the cintamani. From Goryeo to early Joseon Dynasty, Jeogeupsa song was sung in mugo. That song means, one woman waited anxiously for husband’s come back home. She didn’t want anything bad to happen to him. Mugo dancer beating a drum, it seemed give a husband warning of his danger. And Jeogeupak music became increasingly earlier and earlier. When Jungjong was on the throne, Jeogeupsa song was replaced by Ogwansan. Ogwansan song means, devoted son’s mind. It meet the needs of the age. When Sunjo was on the throne, Ogwansan song replaced by prince of Hyomyeong’s Mugo song. It seemed, dancers were dancing to the music. In the local public officials, Mugo performed very popular, without song mostly. In conclusion, the meaning of the songs, dances, and music in the Mugo were great variety changed. The reason for the change was not clear, but it would meet the requirements of the age.
한국어
이 글의 목적은 무고 정재의 가무악 요소인 악장․춤․반주음악에 담긴 의미는 무엇 인가? 그 의미가 고려부터 대한제국까지 어떻게 변했는가를 밝히려는 것이다. 연구대상 인 무고는 가장 긴 역사를 지닌 정재이면서, 가장 인기리에 공연되었던 정재였다. 연구 의 시기적 범위는 고려시대부터 대한제국기까지이다. 문헌연구방법으로, 『고려사』「악 지」ㆍ『악학궤범』ㆍ『의궤』ㆍ『정재무도홀기』와 관련 문집을 살펴보았다. 이혼이 50대 후반에 경북 영해로 좌천되었을 때, 바다에 떠 있는 나무토막을 얻어 무고 를 만들었다. 이혼은 직접 무고를 가르치기도 했는데, 쌍나비가 훨훨 나는 듯, 두 용이 구 슬을 다투는 듯한 모습이었다. 이혼은 북소리와 춤사위로 좌천된 자신의 처지를 달래려 했 던 듯하다. 무고는 궁중이 아닌 지방에서 탄생되어, 이후 고려의 궁중으로 수용되었다. 고려 말에서 조선전기 의 무고에서는 행상을 떠난 지아비가 위험한 상황에 빠질까를 염려하는 아내의 노래인 정읍사를 불렀다. 춤은 앉아서 맨손으로 춤추기, 앉아서 북채를 쥐고 춤추기, 일어나서 북 주위에서 춤추기, 북을 치면서 춤추기로 점차 고조되었다. 정 읍사 노래에 이어 북을 치며 춤추는 것은 ‘경계’의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2명의 기녀가 1개의 북을 쳤던 『고려사』의 기록은 『악학궤범』에서 8명의 기녀가 8개의 북을 치며 춤추는 것으로 확대되었다. 동서남북에서 점차 빠르게 울리는 8개의 북소리를 정읍사와 연 결하면, 천지 사방의 위험을 경계하라는 메시지가 한층 강화된 것이다. 특히 『악학궤범』에서 무고의 반주음악은 정읍만기-정읍중기-정읍급기로 점차 빨라지면서 절정으로 치달 았고, 장구소리와 상응을 이루었다. 조선 중종대에는 무고의 노래를 정읍사에서 오관산으로 바꾸었다. 오관산은 고려시대 의 이름난 효자 문충이 지었으며, 나무로 깎은 닭이 울 때 비로로 어머니가 늙으시라는 내용의 노래였다. 중종대에 악제를 개편하면서 효를 중시하던 시대적 분위기 때문에 무 고의 노래가 ‘아내의 사랑노래’에서 ‘효자의 노래’로 바뀐 것이다. 조선후기 순조대에 무고의 노래는 오관산에서 효명세자의 무고 악장으로 다시 바뀌었다. 당나라 시인의 시를 바탕으로 2장으로 지었는데, 모두 아름답게 춤추고 연주하는 공 연자의 모습을 비유적으로 표현하였다. 음악의 효용성에서 공연현장과 밀접한 내용으로 바뀐 것이다. 조선후기에는 무고의 북이 1개로 거의 고정되었고, 무원의 숫자가 확대되 었다. 따라서 북소리보다 춤사위가 훨씬 강조되었고, 이는 효명세자의 악장내용과 잘 어 울리는 조합이었다. 반주음악은 주로 향당교주가 쓰였으며, 여민락이나 보허자 같은 당 악이 쓰이기도 했다. 조선전기처럼 반주음악이 점차 빨라지며 고조되는 분위기는 더 이상 없었다. 조선후기 지방관아에서도 무고는 인기리에 공연되었다. 지방관아의 무고는 창사가 없고, 반주음악도 소략하였으며, 춤의 요소가 가장 두드러졌다. 따라서 무고의 의미보다 춤사위 자체가 확장되는 경향을 보였다. 무고의 창사에 내포된 의미는 시대에 따라 바뀌었고, 그것이 의미의 역사성이다. 무고정재의 의미는 고유하지 않으며 고정적이지도 않았다. 정재의 의미와 춤은 매우 유동 적으로 정치적으로 결합되었으며, 반주음악의 변폭도 컸다. 역사 속에서 다양한 의미를 지닌 무고가 다른 버전으로 재현되기를 소망한다.
목차
1. 머리말
2. 경북 영해(寧海)에서 무고의 탄생
3. 아내의 사랑노래를 부른 고려-조선 전기의 무고
4. 효자의 노래를 부른 조선 중종대의 무고
5. 기녀의 춤추는 모습을 노래한 조선 후기의 무고
6. 조선 후기 지방의 무고
7.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