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申維翰의 海游錄 재론ㆍⅡ ― 필담창수집 『桑韓星槎答響』과의 대비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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申維翰の海游錄再論 2

신유한의 해유록 재론ㆍⅡ ― 필담창수집 『상한성사답향』과의 대비를 중심으로

고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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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한국어

이 글에서는 『桑韓星槎答響』을 통해 『海遊錄』의 이면을 살펴보았다. 『桑韓星槎答響』은 己亥年(1719) 사신의 행렬이 돌아오는 길에 벌써 大坂에서 출판된 것으로 주목을 받은 책이다. 우리는 여기서 申維翰이 써서 남긴 시를 발견하고, 제술관으로서 거리낌 없이 불교에 관해 논의한 내용과, 군신간 충의가 도드라지는 고사에 儒者로서 보인 관심을 확인한다. 이 글에서 처음 그 내용이 소개되는 『桑韓星槎答響』은 신유한을 비롯한 제술관과 서기 등이 일본에 도착하자마자 만난 일본의 館伴과 나눈 창화 기록이다. 對馬島에 도착한 뒤 6월 29일의 첫 대면부터 8월 19일 赤間關까지이다. 『桑韓星槎答響』은 月心이 주도하여 출판되었다. 두 달 남짓한 기간 동안 창화한 작품을 신속하게 정리하여 출판에 부친 월심의 노력은 가상하다. 아마도 신유한 등 사신 일행이 3개월 뒤 오사카로 돌아왔을 때 보여주려는 의도가 숨어 있었다고 보인다. 월심과 창화한 신유한의 시는 5題 9首 실려 있다. 같은 기간의 『해유록』에 신유한은 3題 27首를 실었다. 두 책에 겹치는 시는 한 편도 없다. 『桑韓星槎答響』의 5題 9首를 통해 두 사람이 창화한 시를 볼 때, 실제 신유한이 그의 시에 대해 내린 평가가 『해유록』에 기록한 것처럼 낮다고만 할 수 없을 듯하다. 다소 인상적인 평가를 남겼을 뿐, 창화하는 자리에서 아주 무성의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도리어 입국 전 갖고 있었던 선입관이 월심을 통해 바뀌는 계기가 되었다고도 보인다. 신유한과 월심 사이에 나눈 장문의 필담은 불교에 관한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물론 시처럼 이 필담도 신유한은『해유록』에 싣지 않았다. 그러나 신유한의 불교 논의는 상당한 의미를 갖는다. 통신사행이 이어지는 동안 금기시한 것 가운데 하나가 불교 논의였다. 이런 분위기는 신유한의 사행 길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 같다. 『桑韓星槎答響』의 편찬자가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실은 데에는 그런 희소성이 한몫했으리라 보인다. 赤間關의 고사는 『해유록』과 『桑韓星槎答響』에 같이 나온다. 이 기사는 상대 관반과의 필담도 아니고 창수시도 아니다. 저들의 대화 속에 나오는 한 부분을 신유한이 얻어 옮겨 놓았을 뿐이다. 『桑韓星槎答響』에 실린 8題 10首의 시를 신유한은 이 가운데서 5수만 『해유록』에 옮겨 적었다. 유교적 군신관계에 익숙한 신유한에게 이 사건은 매우 친숙하게 다가왔다고 보인다. 신하가 임금에게 충성을 다하는 일은 칭송하고, 그로 인해 곤궁한 처지에 몰리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심정이다. 월심은 신유한이 이렇듯 관심을 보인 데 고무되어, 『桑韓星槎答響』을 편찬하며 책 끝에 붙였던 것 같다.

일본어

この文では, 『桑韓星槎答響』を通じて, 『海遊録』の裏面を見た.『桑韓星槎答響』は, 己亥年(1719)使臣の行列が帰って来る途中に, もう大阪で出版されたことで注目を引いた本だ. 私たちはここで申維翰が書いて残した詩を見つけて, 製述官として憚りなく仏教に関して論議した内容と, 君臣間忠義が目立つ故事に, 儒者として見えた関心を確認する.  この文で初めてその内容が紹介される『桑韓星槎答響』は, 申維翰を含めた製述官と書記などが, 日本に到着するあとすぐ会った日本の館伴と交じった唱和記録だ. 対馬島に到着した後, 6月29日の初対面から8月19日の赤間関までだ. 『桑韓星槎答響』は, 月心が主導して出版された. 2ヶ月余りな期間の間唱和した作品を, 速かに整理して出版に付けた努力は可賞する. たぶん申維翰などが3ヶ月後, 大阪に帰って来た時, 見せてくれようとする意図が隠れていたと見える.  月心と唱和した申維翰の詩は, 5題9首が積まれている. 同期間の『海遊録』に申維翰は, 3題27首を積んだ. 二つの本に重なる詩は一篇もない. 『桑韓星槎答響』の5題9首を通じて, 二人が唱和した詩を見る際, 申維翰が彼の詩に対して下った評価が, 『海遊録』に記録したように低いとばかりできないようだ. ちょっと印象的な評価を残しただけ, 唱和する席でとてもお座成りではなかったというのだ. 返って, 入国の前に持っていた先入観が, 月心を通じて変わるきっかけになったとも見える.  申維翰と月心の間に交じった長文の筆談は, 仏教に関する内容が主である. もちろん詩のように, この筆談も申維翰は『海遊録』に積まなかった. しかし申維翰の仏教論議は相当な意味を持つ. 通信使行がつながる間, タブー視したことの中の一つが仏教論議だった. こんな雰囲気は, 申維翰の使行道にも特に違わなかったようだ. 『桑韓星槎答響』の編者が, この部分を集中的に載るところには, そんな稀少性が一役したであろうと見える.  赤間関の故事は, 『海遊録󰡕と『桑韓星槎答響󰡕に一緒に出る. この記事は, 相手館伴との筆談でもなくて, 詩でもない. 彼らの対話の中に出る一部分を, 申維翰が得て移しておいただけだ. 『桑韓星槎答響』に積まれた8題10首の詩を, 申維翰は, このなかにで5首だけを『海遊録』に書き写した. 儒教的な君臣関係に慣れた申維翰に, この事件は非常に親しく近付いたと見える. 臣下が王に忠誠をつくす事はほめたたえて, それによって困窮した境遇に追い込まれることを称える心情だ. 月心は申維翰がこのように関心を見せたのに鼓舞されて, 『桑韓星槎答響』を編纂して本末に付けたようだ.

목차

국문초록
 1. 문제의 소재
 2. 己亥使行의 月心과 『桑韓星槎答響』
 3. 『桑韓星槎答響』에 남은 신유한의 시
 4. 신유한과 月心의 불교 논의
 5. 赤間關의 고사에 대한 신유한의 관심
 6. 마무리
 참고문헌
 日文抄錄

저자정보

  • 고운기 高雲基. 한양대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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