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정보
초록
영어
Même après que le christianisme soit reconnu officiellement, l’histoire de la diffusion et de la résistance du christianisme en Europe se répète. L’Eglise, pour sa part, était avide d’édifices qui servent le fonctionnement du culte et qui, en tant que monuments symboliques, expriment la vision chrétienne du monde. Au 13ième siècle, le pouvoir ecclésiastique a atteint son apogée. Alors que des problèmes apparurent du fait du pouvoir absolu de la religion, de magnifiques églises furent cependant édifiées. Cela s’explique d’une part par la volonté des prêtres d’avoir la suprématie dans la lutte pour le pouvoir de contrôle du monde temporel, et d’autre part par la complicité avec le pouvoir royal, désireux d’utiliser le pouvoir clérical. Avec la fin des incertitudes religieuse, sociale et culturelle de l’ère romane, et avec l’entrée dans une société plus stable, les villes se sont développées et les exploitations agricoles se sont étendues de façon prodigieuse. Dans ce contexte, les cathédrales sont devenues le symbole spirituel, culturel et visuel des villes. Finalement, après l’époque romane, le style de construction, qui a pu accumuler toutes sortes de techniques fondamentales, a continué son développement pour donner naissance à un nouveau style d’architecture. A ce moment, la domination de l’Eglise catholique de Rome sur la société médiévale allait même jusqu’au contrôle du monde spirituel. La philosophie scolastique a développé une théologie systémique et a mis en avant l’idée d’une théologie qui mette en harmonie la foi religieuse et la raison, le monde irrationnel et le monde rationnel. On peut dire que le style architectural gothique qui est apparu à cette époque, incarne les changements religieux de cette même ère.
한국어
변화를 거듭해 온 문화예술사조가 시대정신과 함께 하였듯이 건축양식 도 시대의 정서를 반영하였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고딕건축양식은 중 세사회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특히 성당건축으로 꽃을 피운 중세의 건축 양식은 당시의 종교, 사회, 정치, 문화, 경제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본 논문은 중세를 대표하는 고딕 건축양식과 당시의 사회문화적 환경의 연관성을 살펴보고자 하는 의도에서 시작되었다. 고딕 건축양식의 탄생과 발전에 관한 다면적 고찰을 통해서 고딕 건축양식의 등장이 중세의 정치 적, 경제적 사회적, 종교적, 문화적 환경의 산물이었음을 밝혀보고자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중세인의 삶이 담겨 있는 장소topos로서의 고딕성당의 등장을 사회문화적 시각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서기 700년경, 과거 로마제국의 영토에는 비잔틴, 사라센, 기독교의 세 문명이 자리 잡았다. 비잔틴은 동로마를 중심으로 동방정교를 믿었다. 사 라센은 북아프리카와 이베리아 반도를 중심으로 이슬람 문화를 발전시켰 다. 라틴어를 기반으로 한 기독교 국가들은 이탈리아 반도와 알프스 이북 의 서유럽을 중심으로 발전하였다. 서기 900년경까지 이러한 세력의 균형 이 유지되면서 기독교는 중세 문명의 중심에 서게 된다. 이집트와 메소포 타미아에서 시작된 고대문명이 그리스와 로마를 지나서 서유럽에서 기독 교 문명으로 정착하게 된 것이다. 지중해와 서유럽은 같은 서양문명권에 속해 있지만 대비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지중해는 헬레니즘을 기반으로 한 해양문명을 발달시켰으며 도시문명을 근간으로 발전하였다. 반면에 서 유럽은 기독교를 기반으로 한 대륙문명을 발달시켰으며 농업을 근간으로 하였다. 그러나 10세기 이후에 일어난 급격한 인구의 증가에 따른 사회변 화의 영향으로 중세사회는 도시화의 길을 걷게 된다. 고딕 건축양식은 이 러한 변혁의 시기에 탄생하였다. 당시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 등의 환경은 절대적 위치에 있던 왕권과 가톨릭으로 하여금 새로운 변화를 이끌 도록 요구하였다. 고딕성당은 중세 사람들의 성전이며 기독교 신앙을 위한 구조물이었다. 그러나 12~13세기 프랑스 북부의 여러 도시들이 고딕성당을 건축하기 시 작하였을 때 기독교 이외의 사고가 건축에 영향을 미쳤다. 고딕성당에는 당시까지 프랑스인의 마음에 깊이 자리 잡고 있었던 자연숭배사상이 담겨 있다. 성당이 들어선 지역은 자신들의 선조인 골족Gaulois이 신성한 제사 를 올리던 곳이었다. 이러한 공간의 탄생은 중세의 사회적, 종교적, 문화적 환경 때문이었다. 왕권의 강화를 바라는 정치적 이유와 종교적 권위를 유 지하고자 하였던 교황권의 협력이 웅대한 공간의 창조로 나타난 것이다. 이들의 노력이 건축사에 큰 획을 그은 건축물을 탄생시켰다. 그것이 바로 고딕성당이다.
목차
2. 중세 프랑스
3. 고딕건축의 성립배경
4. 고딕 건축의 특징
5. 고딕건축과 중세사회의 연관성
6. 고딕 건축의 사례 : 성당
7.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