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정보
초록
영어
A village is a minimal unit of traditional residential community, and it is also a terminal administrative unit controlledby central government. During the Joseon Period, noblemen, commoners, and the humble resided altogether within the village, but there was rigid regulation to limit size of residence to the social class.
Unlike other contemporary houses such as thatched cottages and tile-roofed houses under regulation of house size, semi-subterranean houses of the Joseon Period, archaeologically investigated and reported, seem to be out of the size regulation. Even though semi-subterranean houses were not a matter of concern and even out of the house regulation during the Joseon Period, they seem to have been useful enough in actual life to be distributed in the whole peninsular during the period. They do not display any regularity or standard in structure and shape of plan and considering social complexity of that period, inner space of the houses seems to be too small. Also, postholes to support upper structure are not identified or donot display regularity, and fireplaces, commonly identified, have inappropriate structure for heating and cooking. Considering houses equipped with the ondol (Korean underfloor heating system) above the fireplace reported from other regions, the fireplace of the houses in Daejeon region seems to have been used with the ondol facility rather than independently. Semi- subterraneanhouses constructed in the flat and hillside display some differences in the structure and formof fireplace, and these differences may be related to effective delivery of heat. Topographically, the ondolfacility of the house constructed in the flat seems to be preserved well.
The fireplaces identified from the house in the hillside without the ondol may be understood as a part of the ondol facility of which the upper structure was already missing.
한국어
촌락은 전통적 생활공동체의 최소단위로 국가의 지배체계가 미치는 말단의 행정단위이다.
촌락 내에는 양반·상민·천민 등 다양한 구성원이 함께 거주하며, 家垈의 크기와 집의 間數, 장식 등을 나라에서 계급별로 한정하는 강한 家舍規制의 체계 내에 있었다.
고고학적으로 조사·보고된 조선시대 수혈주거지는 家舍規制에서 제외된 주거형태로 동시기의 기와집이나 초가집과 같은 일반적인 거주지와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수혈주거는 家舍規制에서 다루어지지 않을 정도로 역사에서 배재되어 있었으나 전국적으로 분포하고 있어 실생활에서 유용하게 활용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하지만 조선시대 수혈주거지는 평면형태나 구조에서 규칙성이나 규격성은 확인되지 않는다. 또한 이전시기에 비해 복잡해진 사회상을 고려한다면 주거지의 내부공간이 너무 협소하다. 상부구조를 이루는 주혈은 확인되지 않거나 정형성을 띠고 있지 않으며, 공통적으로 확인되는 아궁이는 난방과 취사에 부적합한 형태를 하고 있다. 이러한 수혈주거지로서의 구조적 취약성은 상면에서 온돌이 확인된 타지역의 주거지 사례를 통해 독립적으로 사용된 것이 아니라 상면의 온돌과 함께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평지에서 확인된 수혈주거지와 대전지역과 같이 구릉지에서 확인되는 수혈주거지의 아궁이 형태는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것은 상면으로 열전달을 효과적으로 하기 위한 구조로 판단되며, 지형적인 요인으로 인해 평지에 입지한 수혈주거지 상면의 온돌구조가 양호하게 잔존한 것으로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구릉지의 사면에서 확인된 대전지역 조선시대 수혈주거지 중 아궁이 시설만 확인되는 경우 문헌에서 보이는 온돌구조의 일부로 이해할 수 있으며, 잔존상태는 상부 고래부가 유실된 것으로 이해될 수도 있을 것이다.
목차
Ⅰ. 머리말
Ⅱ. 文獻에 記錄된 朝鮮時代 竪穴住居址
Ⅲ. 大田地域 朝鮮時代 竪穴住居址 調査現況
1. 伏龍洞遺蹟(中央文化財硏究院 2005a)
2. 老隱洞遺蹟(한남대학교중앙박물관 2003)
3. 梧井洞遺蹟(한남대학교박물관 1998)
4. 元內洞遺蹟(國立中央科學館 2002)
5. 九城洞遺蹟(한남대학교박물관 1997)
6. 官坪洞遺蹟(중앙문화재연구원, 2002a)
7. 九岩洞遺蹟(中央文化財硏究院 2006a)
8. 大井洞遺蹟(高麗大學校 埋藏文化財硏究所 2002a)
9. 大禾洞遺蹟(中央文化財硏究院 2002b)
10. 槐亭高等學校 新築敷地內 遺蹟(中央文化財硏究院 2005b)
11. 龍溪洞遺蹟(中央文化財硏究院 2006b)
Ⅳ. 竪穴住居址의 分析
1. 立地
2. 平面形態 및 規模
3. 內部施設
4. 出土遺物
Ⅴ. 大田地域 朝鮮時代 竪穴住居址의 構造
Ⅵ.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