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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향산 용주봉의 진신사리 탑을 통해 본 球形 浮屠와 사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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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kyamuni Sarira Stupa on the Yongjuu Peak(龍珠峰) in Myohyang Mountain(妙香山) and Identity of the Sphere Shape(球形) Monk Stupa(浮屠) and Relics

묘향산 용주봉의 진신사리 탑을 통해 본 구형 부도와 사리구

강병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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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영어

There is a Shakyamuni sarira stupa standing on the Yongju peak(龍珠峰) behind the main building(大雄殿) of Bohyeon temple(普賢寺) in Myohyang mountain(妙香山), The stupa was originally built in Naewonam(內院庵) area but was moved to the Younju peak in 1930s after it floated downstream during the great flood around 1915. The stupa consists of two story octagonal bolster, four story octagonal pavilion-shaped body, and sphere main body with podium and lotus base. The content of the stupa stele(塔碑) written by the Buddhist priest Hyujeong(休靜大師) informs the construction time and patron of the stupa and background situation when the stupa was built, which provide new art historical perspective as follows. First, early Indian stupa, bell-shaped stone(石鐘形) stupa on the terrace for ordainment, and sphere body(球形 塔身) stupa all can be grouped as Jong(鍾). Original meaning of Jong(鍾) is round shape of grass mound, wine container, and wine cup, which is similar to the shape of early stupa and has different meaning from Jong(鐘). From the story about Jongdae(鐘臺) which was offered during the ordainment ceremony, cited in the Gyedandogyeong(戒壇圖經) by Doseon, the bell(鐘) became to be related to the shape of stupa. Second, Iksan Mireuksaji west stone stupa's(益山 彌勒寺址西石塔) relics of gilt-bronze outer jar, gold inner jar, and Buyeo Wangheungsaji's(夫餘 王興寺址) relics of silver outer jar shows in Baekje era, such as the Han Dynasty bronze Jong. So I think the shape of the bell(鐘) appeared in the Record of Bulguksa Temple Stupa's Renovation(佛國寺西石塔重修形止記) is likely form of Sakyamuni Stupa at Bulguksa Temple's silver sarira jar(銀製舍利壺) and sarira case(舍利盒) than silver sarira outer(銀製舍利外盒) and inner case(內盒). Third, with the development of the Chinese Chan Buddhism, the early Indian stupa shape called Jong(鍾) became rounder which symbolizing tathatā(眞如), the nature of Buddha(佛性), self-examination or svabhāva(自性) as a seamless shape monk stupa(無縫塔) in the 8th century, The change began with the national priest Namyang Hyechung(南楊 慧忠國師) and the inscription of the stupa stele of the Jeongtosa temple(淨土寺) Buddhist master Beopgyeong(法鏡大師) tells that the egg shaped monk stupas(卵塔) of him and his disciple, the national master Hongbeop(弘法國師), were derived from the above mentioned stupa. Fourth, Since the sphere body(球形 塔身) stupa and the bell-shaped stone(石鐘形) stupa on the terrace were appeared as Jong(鍾) on the stupa of Yongju peak stele, the Shakyamuni sarira stupa on the east side of the Hoeamsa temple(檜巖寺) built with the patronage of the Prince Hyoryeong (孝寧大君) in the tenth year of King Sejo(世祖)'s reign(1464) is the one now standing on the northeastern part Hoeamsa temple site(檜巖寺址). Therefore, the stupa testifies the emergence of the sphere body Shakyamuni sari stupa which became to be constructed continuously afterwards.

한국어

묘향산 보현사 대웅전 뒤로 용주봉이 있고 그 곳에는 석가모니 진신 사리탑이 있다. 이 사리탑은 원래 묘향산 내원암 지구에 있었으나 1915년경 대홍수로 밑으로 떠내려 왔던 것을 1930년경에 용주봉으로 옮겨 세웠다고 한다. 이 탑은 8각 2단의 층단 위에 8각 4층 중층 누각식 탑신이 놓이고 그 위에 기단과 연화 받침이 있는 球形浮屠가 올려진 모습으로 휴정대사가 지은 진신사리 塔碑에 탑의 조성 배경, 시기, 조성자등 관련 자료가 밝혀져 있다. 용주봉 사리탑과 탑비문의 내용은 아래와 같은 새로운 미술사적 시각을 제시해 준다. 첫째, 초기 인도의 복분형 불탑, 계단의 석종, 구형부도 등이 모두 ‘종(鍾)’으로 표현될 수 있다. ‘종(鍾)’은 원래 鐘과 다른 뜻으로 봉긋한 풀섭, 술을 담아 두는 ‘종(鍾)’ 기형, 손잡이 없는 술잔 등의 둥근 형태를 의미하며 이는 원래 초기 불탑의 형태와 동일한 모습이다. 한편 ‘종(鐘)’이 불탑의 모습으로 차용되는 것은 도선의 󰡔戒壇圖經󰡕에서 언급되듯이 계단에서 계를 받을 때 울렸던 鐘臺의 故事에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된다. 둘째, 「佛國寺西石塔重修形止記」 기록에 보이는 ‘鐘’과 ‘鍾’은 이 시기 같이 쓰이고 있으며 석가탑 출토 사리장엄구 중 은제사리 내호의 문양이 당나라 법문사 지궁출토 금속 사리기들과 통일신라시대 보상화문전의 모습을 그대로 닮고 있어 이는 통일신라시대 양식으로 보인다. 또한 익산 미륵사지서탑 사리 장엄구 중 금동제사리 외호와 금제사리 내호, 부여 왕흥사지 사리 장엄구 중 은제사리 외호가 II장에서 서술한 漢代 ‘鍾’의 器形을 그대로 형상화하고 있어 ‘鐘’에 해당하는 고려시대 유물은 은제 사리호와 은제 소합일 가능성도 있다. 출토 사리 장엄구에 대한 신중한 연구가 요구된다 하겠다. 셋째, ‘종(鍾)’이라 불리는 옛 복발형 불탑은 중국 선종의 발달과 함께 8세기에 진여, 불성, 자성 등의 의미를 상징하는 圓相과 無縫塔의 의미를 더한 승려 탑으로 확장되어 나타나게 되고 이에 따라 형태도 좀 더 둥근 모습으로 조성된다. 이러한 변화의 근원은 남양 혜충국사로부터 기인하며 정토사 법경대사탑 비문의 내용을 통해 볼 때 그의 탑과 제자인 정토사 홍법국사실상탑의 卵塔 형상도 여기에서 비롯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후 이러한 모습의 승탑과 불탑이 계승되다가 국내적, 국외적 연고에 따라 麗末鮮初에 다시 유행하게 된다. 넷째, 용주봉 진신사리 탑비에 구형부도와 계단형 석종이 모두 ‘종(鍾)’으로 표현됨으로 세조 10년(1464년) 5월 효령대군이 회암사 동쪽에 조성한 석가모니 진신사리 탑은 양식상, 형태상 현재 8단 위 동북쪽에 있는 회암사지 부도탑임을 알 수 있다. 이로써 이 탑은 이후 조성되는 球形 세존사리탑의 시원 양식으로서 그 가치가 주목 된다 하겠다.

목차

Ⅰ. 머리말
 Ⅱ. 용주봉 진신사리탑과 탑비를 통해 본 鍾의 의미
 Ⅲ. 「佛國寺西石塔重修形止記」에 보이는 ‘銀鐘’의 형태
 Ⅳ. 南陽 慧忠의 無縫塔과 정토사 홍법국사실상탑
 Ⅴ. 회암사지 부도탑의 조성 연대와 의의
 Ⅵ.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저자정보

  • 강병희 Kang Byunghee. 경기도 문화재위원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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