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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통일이 한국에 주는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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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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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한국어

독일은 2차 대전 후 전승국인 미.영.불.소에 의해 4개 지역으로 분할되어 점령 통치를 받다 1949년 9월 독일연방공화국(서독)과 1949년 10월 독일민주공화국(동독)이 수립되어 동.서독으로 분단됨. 독일의 수도 베를린은 4개 지역으로 분할되어 점령 4개국이 직접 관할하는 “특수지역”으로 동독내에 위치한 “섬”과 같았음.
1990년 10월 3일 동.서독이 통일 될때까지, 베를린문제와 독일통일문제 등 독일전체에 관련된 사항은 전승 4개국의 권한과 책임 사항이었음. 서독은 세계 3대 경제대국이었으나, 정치적으로는 국가의 주권에 제약을 받는 나라였음. 따라서 독일이 그렇게 갑작스럽게 통일이 되리라고 예견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음.
1985년 3월 소련에 고르바쵸프가 등장한 후 소련 및 동구권에 개혁과 개방의 물결이 전파되었고, 동독에도 1989년 1월부터 민주화를 외치는 시민들의 대량 시위가 급속히 확산되었음. 1989년 여름 폴란드, 체코, 헝가리의 서독대사관에 동독탈주민이 대거 진입하고, 급변하는 정국은 한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됨.
1961년 8월 13일 동독이 주민들의 대량 탈출을 막기 위해 설치한 베를린장벽은 1989년 11월 9일 동독공산당 대변인의 “역사적인 말실수”에 의해 순식간에 붕괴됨. 유럽에서 동^서 냉전의 상징이었던 베를린장벽이 아무도 예상치 않았던 시기와 방법으로 붕괴된 것임. 그리고 1990년 10월 3일 동독이 서독에 스스로 편입하는 방식의 동.서독 통합이 이루어짐.
필자가 가까이서 본 독일통일은 하나의 “종합예술품”임.
독일통일은 100만이 넘는 군대가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평화적으로 이루어졌고, 통독주역은 동독주민들이며, 서독 정치가들의 정확한 기회 포착과 과감한 추진력, 서독의 막강한 경제력의 뒷받침, 서독의 노련한 외교력, 서독 공무원 집단의 저력과 전문성, 통일 후 30년 동안 동쪽지역 재건을 위한 세금 인상을 감내하는 서독주민들의 인내심이 함께 어우러져 만들어진 “예술품”이라고 봄.
한국의 분단 상황은 독일과는 매우 다름. 한국은 대외적으로 주권의 제약을 받는 국가가 아니지만, 전쟁을 겪은 남.북한의 관계는 동.서독의 관계와 비교 할 수 없는 어려운 상황임. 따라서 독일통일이 한국의 모델이 될 수는 없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이 분단극복을 위해 시행한 많은 성공적인 사례와 통일과정에서 행한 실수는 한국의 분단극복을 위해 여러 시사점을 주고 있음. 한국은 통일을 대비한 준비에서 독일통일이 주는 교훈을 적극 연구하고 우리의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임.

목차

초록
 1. 독일의 “기본법”과 “통일정책”
  가. 통일을 대비한 서독의 “기본법”
  나. 독일의 “통일정책”
 2. 동ㆍ서독 교류와 동독주민의 탈출
  가. 동ㆍ서독 인적 교류
  나. 동독인의 탈출과 베를린장벽 구축
  다. 서독의 이주민 수용 체제
 3. 동구의 변혁과 동독의 붕괴
  가. 동독주민의 대량 탈출
  나. 베를린장벽 붕괴
  다. 동독의 붕괴
 4. 독일통일 후 대두된 문제점과 통합현황
  가. 통일 후 대두된 문제점들
  나. 통일 후 이룩한 성과
 5. 독일통일의 역사적 의미와 한국에 주는 교훈
  가. “종합예술품” 독일통일
  나. 독일통일의 역사적 의미
  다. 독일통일이 한국에 주는 교훈
 참고문헌

저자정보

  • 김영희 우석대학교 초빙교수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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