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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社稷祭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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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사직제사

조우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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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한국어

중국의 社稷祭祀가 농경신앙에 뿌리를 두고 있듯이, 고구려 사직의 원초적 형태 역시 농경과 연관이 있다. 따라서 초기 일본학자들에 의해 제시된 고구려 ‘穀靈信仰’의 존재 자체는 타당성 있어 보인다. 다만 중국사 상, ‘사직’의 기능과 의미가 역사의 전개와 함께 변화됐던 것처럼, 고구려의 사직관념 또한 고정불변이 아니었으며, 사회적 변동에 동반하여 변모되었다. 그러므로 농경신앙이라는 원초적인 의미만을 가지고 고구려의 사직제사를 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고구려 사직제사의 원초적 형태는 地母神의 神主를 石洞에 안치했다가, 제사 당일에 강가에 모셔 풍작을 기원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종교행사는 비록 那部聯盟 강화라는 숨겨진 정치적 목적성을 띤 것이라고는 하나, 祭天의례와 마찬가지로 구성원 모두가 참여하는 농경의례의 외형을 유지하고 있었으며, 일반 참여자들에게 있어, 풍요와 다산 기원이 주목적이었다. 3세기 중국 측 문헌에 등장하는 고구려의 ‘靈星社稷’에서 ‘사직’은 ‘영성’과 같은 이미를 중복해 병기한데 불과하며, 국토의 상징으로 고정된 후대 ‘사직’의 의미와는 별개의 것이다. 그러므로 일각에서 제기되어왔던 고구려의 사직제사는 중국의 영향이라는 견해는 적어도 3세기를 전후한 시기 고구려의 ‘사직’에 대한 정확한 이해라 할 수 없다. 4세기 이후 고구려의 사직과 관련해, 故國壤王代의 ‘立國社’가 주목된다. 앞선 연구에서도 제기되었듯이, 고구려의 ‘국사’의 건립이야말로 유교적 예법에 따라 새롭게 정립된 국가와 영토의 상징으로서 사직제사체계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또한 이렇게 새롭게 정비된 사직제사체계는 이미 농경신앙과 같은 순수 종교적 기능이 제거된 채, 왕권과 밀착하여 일종의 정치적 장치로 고정된다.

목차

국문초록
 I. 머리말
 II. 社稷祭祀의 기원
 III. 고구려 社稷祭祀의 전개
  1. 원초적 형태
  2. 3세기 전후, '靈星社稷'의 의미
 IV. 맺음말
 中文摘要
 參考文獻

저자정보

  • 조우연 趙宇然. 인하대 한국학연구소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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