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정보
초록
영어
This essay aimed to explore the political and individual dimensions that applied as agents of Seopo Kim Man Joong’s acceptance of SONGKANG GASA. Chapter 2 traced the process of the time when collective memories about SONGKANG were formed within the political environment of the 17th Century and passed down to Seopo. In addition, chapter 3 explored the individual standards Seopo applied when accepting SONGKANG GASA. Following is a brief summary. Present memories about the historical past are not naturally made but rather are constructed artificially for the establishment of universal legitimation of the group that dominates or wishes to dominate the hegemony of society. Seopo’s memory of SONGKANG is also alike, but memories about SONGKANG in the mid-late 17th Century, which experienced severe changes in political situations, are acutely divided according to the interests of the group that dominated the government. It is speculated that there was a need for the ordinary people to fixate their memories about SONGKANG in the situation where evaluation and compensation about SONGKANG completely changed according to alterations in political spectrum. Classic cases of these include the republishment of 『SONGKANG COLLECTION』, writing of
한국어
본 논문에서는 서포 김만중이 송강가사를 수용하는 데 있어 그 동인으로 작용했던 측면을 집단적 차원과 개인적 차원으로 이분하여 살펴보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2장에서는 17세기의 정치적 환경 속에서 송강에 대한 집단적 기억이 생성되고 그것이 서포에게 전승되어 간 저간의 과정을 추적하였으며, 3장에서는 서포가 송강가사를 수용하는 데 적용했던 개인적 기준들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 대강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역사적 과거에 대한 현재의 기억은 자연적이기보다는 사회의 헤게모니를 장악한, 혹은 장악하고자 하는 집단의 보편적 정당성 확립을 위해 인공적으로 구축되는 측면이 존재한다. 송강에 대한 서포의 기억 역시 마찬가지인데, 정국의 변동이 극심했던 17세기 중후반에 송강에 대한 기억은 정권을 장악하는 집단의 이해관계에 따라 첨예하게 갈라졌다. 정치적 판도의 변화에 따라 송강에 대한 평가와 보상이 판이하게 달라지는 상황 속에서 서인들은 그에 대한 기억을 고정시킬 필요가 있었을 터, 『송강집의 重刊, <송강연보>의 작성, 기축옥사의 전말을 기록한 서책의 발간 등은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렇게 해서 형성된 집단적 기억은 당연하게도 집단에 소속된 개인의 기억들을 단일한 방향으로 유도했던바, 이선과 김만중이라는 서인 계열의 거두들이 매우 인접한 시기에 송강가사를 문자로 전사하고자 했던 것은 이와 같은 기억의 쟁투 과정이 그 기저에 깔려 있다. 한편, 서포에게는 송강의 작품을 능동적이고 긍정적으로 수용할 만한 구성된 기억이 있었고, 이에 따라 그것을 문자로 정착시키고자 했다. 그러나 이러한 행위 자체가 당시로서는 상당히 낯선 것이었기에, 이에 대한 나름의 변호가 요구되었던바, ‘眞詩’의 조건에 대한 서포 자신의 견해가 틈입하는 지점은 바로 여기이다. ‘天機之自發’이라는 새로운 기준은 노래가 비록 언문으로 되어 있지만 그것이 眞情을 담보하고 있기 때문에 수용해도 무방하다는 논리적 근거로 기능한다. 이렇게 볼 때, 그가 송강의 가사작품들을 수용했던 것은『古詩選』․『詩選』등의 選詩 행위를 통해 당시의 무기력한 詩風을 교정해 보려는 시도와 크게 다르지 않다. 요컨대 ‘초동급부의 나무하는 소리와 물 긷는 아낙네의 소리가 학사대부의 시부보다 낫다.’라는 그의 파격적 선언은 언문이라는 표기문자 때문이 아니라 그것들이 인간적 감정을 자유롭게 묘파할 수 있는, ‘노래’라는 형식적 기제에서 기인한 것이다.
목차
1. 서포에 대한 우리의 독법
2. 송강에 대한 집단기억의 생성과 서포
3. 서포의 송강가사 수용과 그 이론적 배경
4. 결론
참고문헌
Abstra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