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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허(耘虛) 스님, 교육의 큰 발자취 - 운허스님과 광동중 고등학교 -

원문정보

A Study on the Great Educational Achievements that Buddhist Monk Woonhyo made - Focused on Buddhist Monk Woonhyo Monk and Kwangdong Middle and High Schools -

신용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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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영어

Born in Jeongju, North Pyeongan Province of Korea during the Japanese Occupation Period, Lee Hak-soo (李學洙, 1892-1980) started his 10-year participation in the Korean Independence Movement in Manchuria. He became a Buddhist monk at Bongil-sa and Yujeom-sa Temples in Mt Geumgang, located in Gangwon Province, while hiding from Japanese police. He was a great educator based in Bongsun-sa Temple(奉先寺) in Gyeonggi Province who had lived during a difficult time in Korean history. Also known as Park Yongha(朴龍夏) and Ven Unho(耘虛), Lee devoted his whole life to educating students and the followers of Buddhism. In Manchuria, he taught at schools to improve the future of Korea. Since becoming a monk in 1921, he taught Buddhists Chinese characters and the Buddhist doctrine. After Japanese left Korea in 1945, Lee founded Kwang-dong Middle School(光東中學校) in 1946 and served as the principal. In 1952, he also established Kwang-dong High School of Forestry and took over a girls’ Middle school in nearby Uijeoungbu City and renamed it Uijeongbu Kwang-dong High School. Lee Hak-soo (Ven Unho) was not only a famous Buddhist monk who led the translation of 80, 000 Tripitaka(八萬大藏經) Koreana but also a fighter for the Independence Movement and educator who contributed greatly to the society and Buddhism. He was a great educator who founded and managed schools as a chief director and principal. Therefore, his successors and students have set up a monument and his statue at Kwang-dong High School in Namyangju City to commemorate his great achievements.

한국어

평안북도 정주에서 일본의 한국지배시기에 출생한 이학수(李學洙, 1892-1980)는 만주지역에서 10년간 일본에 대항하는 독립운동을 시작하 였다. 그는 서울에서 일본의 경찰에 쫓겨 강원도의 금강산의 봉일사와 유점사에서 스님이 되어, 경기도의 봉선사(奉先寺)를 중심으로 일제치하 라는 어려운 시대에 살았던 위대한 교육자이기도 했다. 박용하, 그리고 운허(耘虛) 스님으로 잘 알려진 그는 독립운동시기부터 죽을 때까지 학생과 불교신도를 위한 교육에 한평생 공헌하였다. 만주에 서는 학교 교육을 통해 애국심으로 민족의 미래를 준비했다. 1921년 스 님이 된 뒤에는 불교의 사찰에서 항상 신도들에게 한문과 불교의 교리 를 가르쳤다. 1945년 일본으로부터 한국이 해방된 후, 경기도 남양주시에 1946년 광동중학교(光東中學校)를 세우고 교장으로서 교육에 크게 공헌하였다. 이 중학교에 1952년에는 광동(산림)고등학교가 세워지고, 인근의 의정부 시의 여자중학교를 인수하여 의정부 광동고등학교로 고쳤다. 이와 같이 이학수/운허스님은 독립운동가이면서, 팔만대장경을 한글번역을 주도한 유명한 불교의 스님이에 머물지 않는다. 그는 불교 안에서, 그리고 사회 에서 교육에 크게 공헌한 교육자이었다. 그는 학교를 세우고, 운영을 책 임을 맡은 이사장과 교장으로서, 학생을 가르친 위대한 교육자였다. 그 래서 후진들과 제자들은 남양주시의 광동학원 안에 그의 공덕을 기리는 비석과 동상을 세워 추모하였다. 본 고찰에서는 운허스님의 생애를 교육적인 측면에 유의하여 그 개요 를 광동학원의 역사와 함께 조명하였다. 이 고찰이 운허스님 연구, 불교 교육사 연구, 해방공간의 불교사 연구 등에 도움이 되길 기대한다.

목차

한글요약
 서론
 Ⅰ. 구국독립운동으로서 교육의 큰 뜻
 Ⅱ. 운허스님과 광동학원
 Ⅲ. 광동학원의 수난과 재건
 Ⅳ. 학교의 체제정비와 불교학교의 모습 구비
 V. 학교의 학풍과 문화
 결론 : 광동 60년의 회고와 전망 및 제안
 참고문헌
 Abstract

저자정보

  • 신용철 Shin Yong-chul. 경희대 사학과 명예교수. 학교법인 광동학원 이사, 광동학원 운허사상연구소장.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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