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有菴 李厚林의 學問과 思想 -艮齋學의 連續과 不連續의 觀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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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am Yi Hu-rim's Learning and Thoughts -From the Viewpoint of Continuity and Discontinuity of Yangjaehak (艮齋學) Study-

유암 이후림의 학문과 사상 -간재학의 연속과 불연속의 관점에서-

張炳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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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영어

Yuam Yi Hu-rim (affectionate name is Gyeongsin) lived in Sacheon, Gyeongsangnam-do in the early and middle period of the 20th century (1893~1972). He is a non-governmental scholar of the last Confucian generation of Korea, and experienced the period of the Japanese colonial rule, Korean War and the Yusin regime of the country. He learned under the schools of Ganjaehak study founder Yangjae Jeon U (1841~1922) and of Yeongnam Nosahak study's successor Songsan Gwon Jae-gyu (1870~1952), as he engaged in wider ranges of human and academic exchanges, thus developing his own creative study system. His diagnosis of times and his response to such are based on the Ganjaehak philosophy of "keeping righteousness and cleaning oneself", and his world view of public righteousness, public interest and public mindset are linked with Yulkgok's public moral and ethic philosophy. He endeavored to inherit his teacher Ganjae's Seongsasimjeseol (性師心弟說, a theory of putting Reason as the teacher and mind as the student). However, rather, he praised realistic mind's divinity and ability and realized the importance of mind study. He also emphasized that mind should govern body. This is understood to mean that he prioritized mind over human nature. At that time, Yuam emphasized mind study and probably aimed to shift to mind study because he sensed the limitations and possible crisis of Ganjae's Simbonseong (心本性) theory, amid various schools of thoughts (Hanjugak, Nosahak, and Hwaseohak) emphasizing mind study. Amid western studies deeply invading Korean nationals and disarraying them, he indicated the limitations of Juja's Neo-Confucianism, which triggered Confucian factionalism, and led the promotion of Korean thoughts' unification that could involve not only Confucian circles but also Buddhist and Taoist circles, namely, the thought that mind, human nature, divinity and reasoning are all one thing.

한국어

有菴 李厚林(字 敬信, 1893~1972)은 경남 泗川에서 20세기 초반 國亡의 일제 강점기와 광복 및 6.25 동란, 1960년도에서 1970년도 이어지는 5.16 군사혁명 및 유신정권 체제 등을 거치면서 살았던, 즉 조선 유학의 종착점에 서 있었던 在野學者라고 할 수 있다. 유암은 艮齋 문하에 2년, 노사학파의 松山 權載奎(1870~1952)의 문하에 30여년을 드나들게 된다. 그러면서 그는 두 문하의 문인들과 광범위한 인적․학적 교유를 가지면서 독자적이고 창의적인 학적 체계를 구축하였다. 유암의 시대진단과 이에 대응하는 삶의 자세는 대체적으로 간재학의 守義自竫의 정신체계를 계승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그의 公義, 公利, 公心의 경세사상은 율곡의 公道論的 정신세계에 맞닿아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그리고 문장론에서는 주자와 간재의 도본문말론에 기초하면서도 문장의 근본을 四書가 아닌 六經에 기초하는 것과 明心과 養氣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있는 점 등은 나름의 독자적인 체계를 제안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心性論에 있어서는 처음 간재가 일러준 ‘미발의 靜體위주의 工夫論’에 근거한 율곡의 ‘靜坐收斂’을 통한 ‘存心’ 공부에 회의하고, 율곡의 正心을 비롯한 顔子의 四勿箴, 曾子의 三省論, 仲弓의 主敬行恕, 程朱의 主敬論 등의 공부론으로 전환을 기획한 것에 비추어 보면, 이는 또한 간재학의 불연속의 지점에 서있다고 할 수 있다. 심성론의 전변문제와 관련해서는, 선사 간재의 性師心弟說의 계승을 위해 노력한 측면이 보이기도 하지만, 전반적으로 心과 性의 尊卑, 師弟의 비교 논의가 거론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는 불연속의 지점에 서있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유암은 심과 성의 비교논의에 있어, 현실적인 心의 神靈性과 功能을 찬미하고 心學 工夫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있을 뿐만 아니라, 心이 一身의 主宰者임을 강조하고 있는 점 등은 오히려 性에 비하여 心의 우위성을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주장이 가능한 것은, 그의 공부론에서 본질적인 存心에서 현실적인 正心으로의 전환, 문장론에서의 明心, 심성론에서의 用心․良心․公心 등과 같은 心學의 강조에서도 확인될 수 있다. 유암의 이와 같은 심학에의 강조는 당시 한주학파, 노사학파, 화서학파를 비롯한 전반적인 사상의 중심이 心學의 강조로 흐르고 있는 현실적 상황에서, 간재의 ‘心本性’설이 가질 수 있는 어떤 한계와 위기인식을 감지하고, 심학에로의 선회를 기획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여기에 더하여 유암은 다시 孔子의 ‘人能弘道’와 張載의 ‘心能盡性’에 근거하여, 사람과 心의 현실적 功能 가치를 우뚝하게 상정하고 있다. 유암은 당시 간재학과 노사학의 두 문하를 드나들었다는 비판에 크게 구애되지 않고 광범위한 師友 및 師弟 관계의 인적・학적 네트워크를 통해서 독자적이고 창의적인 학적 체계를 구축하게 된다. 그러면서 그는 당시 서학이 깊이 침염하여 우리의 민족 정신을 빼앗고 있는 상황에서, 같은 담장 내의 師友들 간에 理氣心性論관 관련한 異見으로 인하여 분열과 분파를 조장하는 상황을 개탄하고, 이에 대한 극복의 일환으로 모든 학파는 理의 一統 정신에 귀결할 것을 선창한다. 이에 더 나아가 유학의 분파주의 조장의 중심에 있었던 주자의 성리학적 窮理 공부에 대한 어떤 한계성을 지적하면서, 유학계뿐만 아니라 불가와 도가의 사상까지도 아우를 수 있는 한국 사상의 일통주의 즉 ‘心·性·神·理는 모두 같은 하나이다.’를 선양하였다.

목차

국문요약
 Ⅰ. 序論
 Ⅱ. 生涯와 現實 處世
 Ⅲ. 學的 履歷 및 師承關係
 Ⅳ. ‘窮經-集義-養氣’의 文章論
 Ⅴ. 心性論의 轉變 樣相
 Ⅵ. 結論
 참고문헌
 Abstract

저자정보

  • 張炳漢 장병한. 영산대학교 교수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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