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정보
초록
영어
In this paper, revealed in a written answer of the medical members[醫員筆談] to the Tong-sin mission[通信使] of Korea and Japan both countries' interests and topics according to the doctor examined the orientation. The criteria is diagnostic point of view of the pathogenesis, interest in drug, clinical attitude. The first, Japanese doctors to diagnose the cause of the disease pathogenesis and finding ways to use them. Japanese doctors symptoms of the disease seriously and pays attention to clarify its identity. But the Chosun[朝鮮] dynasty doctors find the cause of the disease should take full advantage of insights. Chosun[朝鮮] dynasty doctors of traditional medicine theory, the references should want to reveal the cause of the illness. The second, Chosun[朝鮮] dynasty doctors were reluctant attention to the drug. Japanese doctors were very interested about the drug, the herb are also included here. The cause of the first is the influence of pharmacists. Second reason is because medicinal purposes for the study of Japanese. Therefore, questions of the Japanese doctors associated with the natural history of Chosun[朝鮮] interests and herbs for the purpose of research is embedded resistance. On the other hand, Chosun[朝鮮] dynasty doctors was careful about information disclosure, medicines because there was no need to investigate. And the effects of medicines, including the important thought of the practicality. The third, Highly medicine[古方醫學] in Japan at that time took place in the medical world. It was popular in Japan at the time of the academic community is the effect of The old academic[古學]. Chosun[朝鮮] on the basis of traditional medicine doctors prescribe important clinical thought. And under the influence of Donguibogam(東醫寶鑑) easy to get around the center of the prescription drugs that were seriously. The medical members[醫員] to the Tong-sin mission[通信使] through a written answer of the 17·8th century Chosun[朝鮮] and Japan doctors learn more about the identity and way of thinking can be. In addition, by recording the time and customs trends in East Asian medicine may be examined. Because of this, a written answer of the medical members[醫員筆談] to the Tong-sin mission[通信使] has important cultural and historical value.
한국어
본고에서는 통신사 의원필담에 드러난 조일 양국 의원의 관심 분야 및 화제에 따른 성향을 병인 진단의 관점, 약물에 대한 관심, 임상적 태도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첫째, 병인 진단의 관점 상, 일본 의원들은 대부분 병인 진단에 있어 심병(審病)의 방법들을 골고루 동원하는 데 반해 조선 의원들은 주로 한 가지 방법에 의존하는 전통적 성향을 보인다. 즉, 일본 의원들은 표(表)에 드러난 정보와 기술의 종합을 통해 리(裏)에 접근해 들어가는 반면, 조선 의원들은 심병의 통찰력을 최대한 활용한다. 일본 의원들은 외부로 표출되는 병의 증상을 중시하여 그 정체성 규명에 주목했지만, 조선 의원들은 전통적 의학 이론에 입각해 병인에 접근해 들어가 정체성은 물론 병의 근원을 밝혀내고자 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풍토병과 전염병에 대한 둘의 견해 차이도 확인할 수 있다. 둘째, 약물에 대한 관심에 있어서 조선 의원들은 임상의 전제 조건인 약물에 대한 관심이 소극적 성향인데 반해, 일본 의원들의 그것은 집착이 매우 강하다. 이는 두 가지 측면에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우선 의약(醫藥) 분업의 영향이다. 둘째, 약재 조사를 위한 일본의 사전 작업 때문이다. 그러므로 일본 의원의 질문은 박물학적 관심과 조선의 산물 조사를 위한 목적성을 동시에 보여주는 것이다. 반면에 조선 의원들은 시종일관 소극적 답변 태도를 견지했는데, 이는 중요한 정보 노출을 최대한 꺼렸고, 의약의 분업이 이루어진 상태에서 약재를 포함한 각종 생물의 정체성까지 규명할 필요는 없었던 당시 조선 의원들의 경향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일본 의원의 주된 관심 영역은 약재의 주산지와 제법(製法) 등인데, 이는 일본에서 생산되지 않는 약재를 대륙으로부터 입수하기 위해 사전에 계산된 의도가 반영된 태도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조선은 철저히 실증적 이론을 바탕으로 약재의 효과 등 실용성에 보다 큰 비중을 두고 있었다. 셋째, 임상적 태도에 있어 당시 일본에서 송(宋)대 성리학과 깊은 관계에 있던 이(李)·주(朱) 의학은 에도시대 말에 고학(古學)이 대두되면서 그 세력이 감소되어 후세가(後世家)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고, 이른바 고방의학(古方醫學)이 새롭게 일어나게 되었다. 반면, 조선 의원은 전통 의학에 입각한 임상적 처방과 동의보감의 영향으로 주변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처방을 중시했다. 통신사 의원필담에는 이상과 같이 동일한 직업을 가진 외부인의 객관적 시각이 담겨 있고, 그 문화사적 가치가 바로 여기에 있다. 즉, 양국 의원들의 정체성과 사고방식을 비교적 소상하게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기록 비교를 통해 당대 동아시아 의학의 경향을 확인할 수도 있다.
목차
1. 머리말
2. 병인(病因) 진단의 관점
3. 약물(藥物)에 대한 관심
4. 임상(臨床)적 태도
5.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