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한국어
서위(1521-1593)는 明나라 末期의 문인이다. 浙江城 山陰사람으로 자는 文長, 호는 淸藤, 天池生, 田水月 등을 사용하였다. 서위는 시문, 서화, 희곡에 능했고, 희곡 연구에도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淸代의 王夫之는 명대 중⋅후기를 특징지어 ‘天崩地解’의 시대라고 규정하고 있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해체될 만큼 당시는 정치⋅사회⋅경제 같은 외형적 측면부터 인간 정신의 내면적 측면까지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극심한 변화가 발생하고, 모든 전통적 도덕이나 이상, 관념 등이 재평가 받는 시대였다. 狂의 시대를 살아간 서위는 대사의화라는 회화예술을 창안하며, 狂逸의 경지로 나아간 예술가이다. 宋代 이후에 등장한 정주학 속에 융합된 道⋅佛의 영향은 寫意畵 양식에 커다란 변화를 초래하였다. 道⋅佛로부터 逸格과 奇⋅拙⋅醜 등 범주가 전면에 등장하게 되었고, 그것들이 양명심학의 영향아래 狂의 새로운 양식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서위는 양명심학의 광의 양식에 悲憤慷慨的 悲壯美와 以醜見美的 醜美, 脫中和的 奇怪美, 그리고 脫規矩的 放逸美를 통일하여 ‘광일’이라는 새로운 경지를 개척함으로써 명실상부하게 광의 예술을 최고의 경지로 끌어올리는 대사의화를 창안한 것이다. 서위의 삶과 예술세계를 관통하는 중요한 매개 개념은 ‘狂’이다. 서위는 예법을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었고, 반규범⋅반전통적인 사상을 갖추었으며, 소탈하고 자유분방하여 유가에 얽매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情’을 앞세워 예술 창작활동을 전개하였다. 서위가 제기한 ‘情’개념은 시대의 산물이자 시대의 부정이며 시대를 앞서간 진취적인 것으로, 서위가 주장한 ‘聖人論’, 즉 ‘사람을 이롭게 하는 자는 모두 성인’이라는 생각과 함께 서위를 狂人, 광일미로 인도한 핵심개념이다. 狂의 系譜를 계승한 서위가 전개시킨 狂逸미학은 결국 굳은 생각, 폐쇄된 질서를 해체시켜 새로운 시작을 모색하려는 노력이고, 狂의 예술이 역사에 전면적으로 등장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으며, 그것은 바로 聖人의 길에 이르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중국어
徐渭乃明末文人,浙江山阴人,字文长,号曾用青藤、天池生、田水月等。徐渭对诗文、书画及戏曲颇有研究,他在戏曲方面展示了超凡的能力。清代的王夫之评价明代中后期是个“天崩地解”的时代。那时从政治、社会、经济等外在的东西到人类精神等内在的侧面发生了天翻地覆的变化,是一个对所有传统道德或者思想、观念等进行了再评价的时代。生活在“狂”时代的徐渭创造了一个叫做大写意画的绘画艺术,这是一种通过狂逸的境界来表达的艺术。在宋代以后登场的程朱学,融合的道、佛的影响,给写意画的样式带来了相当大的影响。它们受到阳明心学的影响,以全新的‘狂’的样式赢得了地位。徐渭在阳明心学的狂的样式里统一了悲愤慷慨的悲壮美、以丑见美的丑美、脱中和的奇怪美、脱规矩的放逸美,开创了‘狂逸’的境界。名副其实的开创了将‘狂’的艺术引导到最高境界的大写意画。贯通于徐渭的人生和艺术世界的一个重要的媒介概念就是“狂“。徐渭是一个“不喜欢艺法”的性格,具有反规范、反传统的的思想,不仅“脱俗自由奔放,不受儒家思想的束缚”而且是把‘情’放在第一位进行创作的人。徐渭提出的‘情’的概念是当时时代的产物,是对时代的否定,是一个超时代的进取性的概念。他所主张的‘圣人论’,即“把人理性对待的人都是圣人“的想法把徐渭引导为狂人、狂逸美学范畴。承继了狂系的徐渭所开展的狂逸美学最终成为使死板的想法和封闭的秩序解体,探求新视觉的努力,打开了狂的艺术在历史上全面登场的道路。因为这就是到达圣人之路的方法
목차
Ⅰ. 들어가는말
Ⅱ. 明末時代背景과 徐渭의 時代意識
Ⅲ. 狂逸美의 전개 - ‘狂’과 ‘大’의 CROSS
Ⅵ. 徐渭大寫意畵에 드러난 狂逸美
1. 悲憤慷慨的悲壯美
2. 以醜見美的醜美
3. 脫中和的奇怪美
4. 脫規矩的放逸美
Ⅴ. 나오는 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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