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정보
초록
영어
This paper is aimed at explain about ChamSeong and Taoist rituals of the altar ChamSeong or ChamSeongDan. There is a altar called ChamSeongDan at the top of Mountain MaNiSan in Ganghwa Island, Korea. Ganghwa Island is an island in the estuary of the Han River, on the west coast of Korea peninsula. Ganghwa Island's the highest point is Mt. Mani. Legendary god-king TanGun made an altar on top of Mt. Mani, ChamSeongDan. This altar is known as a place of ritual to sky held by TanGun, a national ancestor of Koreans. But it is doubtful, because there is no evidence that GangHwa Island was territory of king TanGun or not. In the early Koryo period Mt. Mani, or Mt. Mali was related with the Buddism. Mani is Maniboju, the cintamani. and Mali is Malizichon, Heaven god. By the way in the middle Koryo period, Taoist ritual was celebrated in Mt. Mali. The first record touch on altar ChamSeong was appeared in 1264, Mongolians invaded Koryo. The Taoist rituals was one of the most important National Rituals. In the early period of Chosun dynasty, Taoism's religious role was accepted, and there were Taoist temples such as Sokyeokjon, Tailjon, and Chamseong. Taoist rituals and Taoist rituals of ChamSeong was held in accordance with the practice of small sacrificial rites. Rituals of the ChamSeong was two kinds of ritual, one is periodical rituals held at spring(March) and autumn(September), the other one is occasional rituals. And gods worshiped in these rituals were Taoist divinities, so that rituals of the altar ChamSeong were Taoist rituals. This altar is that this is a place of worship to sky god as Supreme Being. In traditional times of East Asia, it was prohibited to worship sky god except Emperor who received Heaven's Providence. So this altar is a symbol national pride until now.
한국어
강화도 참성단은 단군이 제천했던 장소로 우리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현재 이곳에서는 매년 개천절에 ‘開天大祭’라는 이름으로 祭天禮가 거행되고 있다. 이에 이 논문은 ‘開天大祭’의 원형을 이해하고 그 의례를 복원하는데 기여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작성되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고려시대 이래로 道敎 의례인 醮禮가 거행되고 있었다. 따라서 본 논문은 ‘開天大祭’의 원형을 규명하는데 있어 참성에서 거행된 초례에 주목하여 보았다. 특히 先朝江華先生日記와 참성 초례 청사의 분석을 통해 당시 거행되던 초례의 실상을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하였다. 이른바 ‘참성단’에서 초례가 거행되기 시작한 것은 고려의 강화 천도 이후였다. 개경의 모든 시설과 국가 운영 체제를 江都(강화)에 그대로 재현한 고려왕조는 초례 역시 강화도 내에서 거행하고자 하였다. 이에 개경 시기의 京․外 초례를 재현하고 복구하여 江都의 구요당[京]과 마니산 참성[外]에서 초례를 지내게 되었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도 참성은 여전히 초례가 거행되는 매우 중요한 장소였다. 참성 초례가 중요한 국가의례였음은 先朝江華先生日記와 靑詞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先朝江華先生日記에 의하면, 참성 초례는 봄(3월)· 가을(9월)에 정기적으로 거행되는 국가 의례였으며, 때때로 종친과 봉작 대신이 香使로 파견되었다. 참성 초례 청사는 현재 7편이 남아 있는데, 이 중 한 편만이 고려말의 것이고 나머지는 조선시대에 작성된 것이다. 그 내용을 분석해 보면, 참성 초례는 天神에 대해 국태 민안을 기원하는 제천례였으며, 부정기적으로 鎭兵이나 祈雨의 목적으로 행해졌다. 이처럼 제천례, 혹은 기우제로 참성 초례가 거행된 사실에서 고려 이래 조선시대까지 참성이 국가 제례의 중요한 장소였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참성 초례는 임진왜란 이후에 폐지되었다. 병자호란 이후인 인조 16년에 복구가 논의되었으나 결국은 ‘名山例’에 따라 山神祭로 거행하도록 하였다. 이때 마니산 의례를 ‘一從五禮儀’라 하였으니 참성 초례는 복구되지 못하고 오례의의 名山 의례에 따라 산신제를 지내게 되었다. 마니산 참성 초례는 임진왜란을 계기로 폐지되고 이후에는 유교 의례에 따라 명산 제사로 거행되었던 것이다.
목차
I. 머리말
II. 참성 의례의 추이
1. 고려시대의 마니산 참성 의례
2. 초선시대 참성 의례의 변화
III. 참성 초례 청사의 분석
IV. 맺음말
【參考文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