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정보
초록
영어
This thesis discusses the Cha-shi written by Hwang-Sang, raised during the fecundity of the exile period. Recently, a new collection of poems that allows for the appraisal of Hwang-Sang’s latter years, titled 『Chi-won-so-go』was discovered, which includes about 30 Cha-shi, or poetry relating to teas. This thesis examines the latter life of Hwang-Sang and his relationship to teas through the documents in 『Chi-won-so-go, and discovers related information embedded within the writing. Hwang-Sang’s latter life in Il-sok-san-bang(mountainous region located in Jeolla Namdo) was routinized with tea drinking. Hwang-Sang possessed a deep insight regarding teas during this period, and it is probable that he recorded this information about tea drinking in writing. The information on teas recorded in the 『Chi-won-so-go』was analyzed in the following four aspects. First, during the 19th century when Hwang-Sang had lived, it is described that tea meetings were held among the Gyeong-Hwa-Sa-Jok(scholars who resided in Seoul in order to learn the culture and science of China). It is predicted that tea leaves were cultivated and produced at a much earlier time in Buddhist temples and in private homes. Second, an example of Hwang-Sang cultivating the tea leaves himself is described, and it seems that he enjoyed drinking both Ddeok-Cha (tea leaves ground and dried and made into a dough) and Ip-Cha (tea leaves). Third, it seems that Hwang-Sang drank the teas for medicinal purposes, as well as for its flavor. Fourth, the 『Chi-won-so-go』held information that suggested Gang-Sim Yi, Deok-ri as the author of 『Dong-Da-Gi』, which has been long debated.
한국어
이 논문은 치원(卮園) 황상(黃裳; 1788~1870)의 차시를 통해 그의 차 생활과 그것을 통해 바라본 19세기 차 문화의 편린을 살펴본 것이다. 근래에 황상의 만년 모습을 살필 수 있는 새로운 시집인 『치원소고 5~6권이 발굴되었는데, 그것에는 30여수의 차시가 실려 있었다. 이 논문에서는 『치원소고를 통하여 만년기 황상의 차 생활을 알아보고, 그것에 담겨있는 관련 정보를 살펴보았다. 황상의 일속산방에서의 만년 생활은 차 생활이 일상화되어 있었다. 이 시기에 황상은 차에 대한 조예가 깊었고 차에 관한 저작도 남기지 않았나하고 짐작된다. 황상의 차와 관련된 정보를 네 측면에서 점검해 보았다. 첫째, 황상이 살았던 19세기에는 경화사족들 사이에 차 모임이 있었던 정황이 포착된다. 절간과 민가에서는 그 이전부터 차를 채집하여 제조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당시 강진뿐만 아니라 고흥 팔영산이나 장흥 천관산에는 많은 차나무가 자생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둘째, 황상 자신도 직접 채다한 사례가 보이며, 그는 떡차와 잎차를 함께 마셨던 것으로 보인다. 셋째, 황상은 차를 약용으로 마셨고, 풍미로도 음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당시에 차인들이 약용으로 차를 마셨던 것과는 사뭇 다르다. 넷째, 『치원소고에는 그동안 논란으로 남아있던 『동다기의 작자가 강심(江心) 이덕리(李德履, 1728~?)로 암시되는 정보를 담고 있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만년기 황상의 일상과 차 생활
Ⅲ. 황상의 차시와 관련 정보
1. 19세기 차의 보급과 향유
2. 떡차와 잎차의 문제
3. 약용의 차와 음용의 차
4. 『동다기』의 저자 문제
Ⅳ.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