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한국어
일본의 한국병탄 100년이 되는 뜻 깊은 해를 맞이해서 그 원인을 냉철하게 분석하는 작업은 한국근현대사의 성격을 올바로 파악하고 현재 한일 양국의 당면과제를 해결하는 데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해준다. 일제의 한국강점 원인은 명백하게 일본의 무력 침략에 있다. 그러나 대한제국의 최고통수권자 고종을 비롯한 집권세력이 급변하는 국내외 정세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여 독립을 수호하지 못한 책임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에 본고에서는 대한제국의 집권세력이 일본의 강점에 어떻게 대응하였으며 그 한계는 무엇인가를 밝혀보는 데 초점을 맞춰보았다.
고종은 일본을 비롯한 열강의 외압에 신속하게 대처하기 위한 일환으로 황제에게 모든 권력이 집중된 강력한 전제정치를 추진하였다. 근황세력을 적극 등용함과 동시에 궁내부․내장원 등을 중심으로 통치기구를 이원화하여 파행적으로 운영했던 것이다. 그 결과 민의의 수렴과 동의를 거쳐 국민을 통합․결집시킬 수 있는 정치제도를 개혁하는 데 실패함으로써 오히려 황제의 정치기반을 축소시키고 국민의 지지기반마저 상실하고 말았다.
집권세력은 상공업을 육성하고 황실재정을 확대하는 데 주력함으로써 부분적으로나마 열강의 이권침탈을 막고 물적 기반을 마련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황실재정의 확대로 정부재정은 축소되었고, 그나마 재정을 효율적으로 관리하지 못한 탓에 식산흥업정책도 체계적으로 추진되지 못함으로써 실효를 거둘 수가 없었다.
집권세력은 근대식 무기를 보유하고 친위대․진위대를 설치하고 원수부를 두어 군사조직을 총괄하는 등 군사력을 증강하는 데 힘썼다. 그러나 국권 수호의 근간인 징병제를 통한 상비군 설치는 재정부족뿐만 아니라 지배질서의 동요를 두려워 한 집권세력의 반대로 이뤄지지 못하였다. 더욱이 러․일 양국의 외압이 겹치면서 군대는 자주 국방을 도모하기보다 국내 치안 유지 및 민란에 대처할 수 있을 조직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집권세력은 열강간의 세력균형을 이용해서 중립외교를 펼치는 등 독립을 보존․유지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자위력이 뒷받침되지 않은데다가 외교력의 부재 혹은 해외주재 공사관의 파행적 운영으로 국제정세를 올바로 파악하지도 못하였다. 따라서 일제의 한국침략을 묵인한 구미 열강에 중재와 원조를 요청하고 을사늑약의 무효를 호소한 정책은 반일적․자주적인 것으로 평가되기도 하지만, 모두 실패로 귀결될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일제의 한국강점 원인은 고종을 비롯한 집권세력의 총체적 부실과 위기관리 능력의 부족에서 기인한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황제권과 황실의 강화․유지에 치중한 나머지 국권과 민권확대를 통한 국민통합과 부국강병을 추진하지 못했던 집권세력의 失政은 일제가 한국을 강점하고 이를 정당화하는 빌미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일본어
日本の「韓國倂呑」の100年になる意味のある年を迎えてその原因を冷徹に分析する作業は、韓國の近現代史の性格を正しく把握し現在の韓日兩國の當面課題を解決するにおいて重要な手がかりを提供してくれる。日帝の韓國强占の原因は明らかに日本の武力侵略にあった。しかし大韓帝國の最高統帥權者としての高宗をはじめとする執權勢力が急變する國內外の政勢に能動的に対応して獨立を保持できなかった責任も見逃してはならない。そこで本稿においては大韓帝國の執權勢力が日本の强占にどのように對應し、またその限界は何であったのを明らかにすることに焦點をおく。
高宗は日本をはじめとする列强の外壓に迅速に対応するために皇帝にすべての權力が集中された强力な專制政治を推進した。勤皇勢力を積極的に登用すると同時に、宮內府․內藏院などを中心に統治機構を二元化して跛行的に運營した。その結果、民意の收斂と同意をへて國民を統合․結集することのできる政治制度の改革は失敗することによってむしろ皇帝の政治基盤を縮小させ、また國民の支持基盤さえも喪失してしまった。また執權勢力は商工業を育成し皇室財政の擴大に主力することによって部分的には列强の利權侵奪を防ぎながら物的な基盤を整える成果をあげた。しかし皇室財政の擴大によって政府財政はむしろ縮小され、また財政の非效率的な管理によって殖産興業政策も體系的に推進できず實效をあげることはできなかった。
執權勢力は近代式の武器を保有して親衛隊․鎭衛隊を設置し、また元帥府をおき軍事組織を總括するなど軍事力を增强するのに力を注いだ。しかし國權守護の根幹である徵兵制を通じた常備軍の設置は財政の不足だけではなく、支配秩序の動搖を怖がった執權勢力の反對によって実行できなかった。さらにロシアと日本の外壓が重なることによって軍隊は自主國防より國內の治安維持および民亂に對處する組織に轉落してしまった。
執權勢力は列强の間の勢力均衡を利用して中立外交を展開するなど獨立を保存․維持しようと努力した。しかし自衛の力が充分ではない状況のなかで外交力の不在あるいは海外駐在の公使館の跛行的な運營によって國際情勢を正しく把握することもできなかった。したがって日帝の韓國侵略を黙認した歐米列强に仲裁と援助を要請し、「乙巳勒約」の無效を呼訴した政策は反日的․自主的なものとして評價されることもあるが、これらのすべては失敗に歸結されるしかなかった。
このように日帝の韓國强占の原因は高宗をはじめとする執權勢力の總體的な不實と危機管理の能力の不足から起因した點も見逃してはならない。
皇帝權と皇室の强化․維持に力を注いだがゆえに國權と民權の擴大を通じた國民統合と富國强兵を推進す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執權勢力の失政は日帝が韓國を强占しこれを正當化する口実を提供したのである。
목차
Ⅱ. 전제황권의 고수
Ⅲ. 황실재정의 파행
Ⅳ. 군사력 증강의 한계
Ⅴ. 대외정책의 착오
Ⅵ.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요약
일문요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