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欽齋 崔秉心의 性理思想

원문정보

A Study on Neo-Confucianism of Geumjae Choi Byung-sim

흠재 최병심의 성리사상

李炯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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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영어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analyze the Neo-Confucianism of Choi Byeong Sim, who actively participated in movements to improve the country’s situation from the end of the 19th to the early 20th century. On one hand, he participated in the independence movement by secretly supplying the sinews of war to the army fighting for national independence from Japanese occupation and on the other hand, he made an effort to build the country’s future by teaching younger students Confucianism. He explained the nature of LiGi(理氣) and SimSeong(心性), accounting for the relationship between them as ‘those that exist as one and two at the same time’. Such explanation was based on the principle to include both at the same time without being partial. In particular, he accepted the Confucian theories of Lee I, Song Si-yeol(宋時烈) and Jeon Woo(田愚) in order to strengthen his theory of LiGi. As for the Theory of SimSeong, he consistently argued that ‘Sim(mind)’ did not superintend but ‘consolidate [兼]’ in the theory of mind’s consolidating nature and the emotions(心統性情論) in Zhuxi learning. While ‘The theory of soengsasimje’ based on such argument is considered to have succeeded the theory of Jeonwoo, who had been his teacher, he also supported ‘the theory of soengsasimje((性師心弟說)’ criticized by other scholars at that time and intended to overcome the Confucian tendency to reconcile Sim with Li. His Confucianism theory considered it as important that the right rules of the nature and community applied to the social hierarchy were harmonized and realized.

한국어

欽齋崔秉心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근현대까지 활약하였다. 그가 활동 하였던 시기에 큰 시련은 바로 일제강점기였다. 일제는 그 시기에 특히 조선 의 국혼을 말살시켜 종국에는 內鮮一體정책을 획책하였다. 당시 뜻있는 유 학자들은 유학의 이념을 지키며 救國운동을 전개하였다. 최병심은 守道的측면에서 유학의 이념을 지키며 구국의 의지를 드러냈고, 은밀히 독립군에게 군자금을 전달하면서 항일운동을 펼치기도 하였다. 특히 그는 전주 향교 근처 念修堂에서 후학 양성을 통해 미래를 도모하면서 학문 을 전개하였다. 본 논문은 최병심의 性理思想을 다룬 것이다. 최병심은 理氣와 心性의 개 념을 밝히면서 그 ‘하나이면서 둘이고 둘이면서 하나이다’는 관계를 명확히 하였다. 이러한 관계를 토대로 리기론에서는 리기의 原頭處와 發用處어느 한편에 치우치지 않고 그 두 가지를 동시에 아우르고자 하였다. 특히 栗谷李 珥의 氣發理乘一途說과 理通氣局說을 원용하면서 理氣能所관계를 주장하여 자신의 리기론을 확 고히 하였다. 심성론에서는 주자학의 心統性情論에 대해 ‘심’은 주재하는 것이 아니라 ‘겸한하다[兼]’는 논지를 일관되게 주장하였다. 이러한 논지를 토대로 ‘성사심제설’은 스승 田愚의 학설을 그대로 계승하면서 당시 학자들이 성사심제를 비판하거나, 불교의 尊心경향 그리고 심과 리를 일치시켜 一理로 여기는 학계의 경향을 불식시키고자 하였다. 그의 성리사상 속에는 국가와 사회의 올바른 규범이 상하 조화되면서 실현 되도록 하는 면이 있었다 하겠다.

목차

국문요약
 Ⅰ. 들어가는 말
 Ⅱ. 理氣 槪念과 그 關係性
 Ⅲ. 心性 關係와 性師心弟說 擁護
 Ⅳ. 맺는 말
 참고문헌
 Abstract

저자정보

  • 李炯性 이형성. 전주대학교 강사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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