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정보
초록
영어
A Study on the Japanese’s Air Defense Policy and Propaganda at the Colonial Joseon(植民地朝鮮) through the Maeil Shin Bo(『每日新報』) Jung, Hye Kyung Maeil Shin Bo(『每日新報』) was the longest Korean-Chinese Daily Newspaper under the Japanese Colonial Ruling Period. Especially, it was the only Korean-Chinese Newspaper which published in 1910's and the last of the Japanese Colonial Ruling Period. It was the official press of the Japanese Government General, so it used to spread the poilicy of the authorities and the trend of Japan. Also the class of the readers was limited. After the Manchurian Incident(滿洲事變), the related articles of the Air Defense on the Maeil Shin Bo were more than 5,000 articles. From among these, the articles of the propaganda were 361 case, approximately, from 1932 unitl 1945. It is possible that figure out the contents and the method of the Japanese Air Defense Policies which were attempt to spread on the colonial Josheon. Japanese tried to spread their propaganda through the typical method, such as Lecture, Lesson, Movie, Exhibition, etc. First, their Air Defence Propaganda were developed more actively, when the war situation progressed satisfactorily, such as the Manchurian Incident and the Sino-Japanese War. But these articles decreased when their motherland, Japan encountered under the U.S Air strike. Second, the Japanese in Josheon and their society was the major subject of these propaganda. The Lecture, Lesson, Movie held around the Japanese Residence. Except the Exhibition Train(展覽列車), they were held the inaccessible place by colonial Josheonese. Also, the Lecturer were the officer of the Josheon Army(朝鮮軍) and the member of the government-related organizations. They were held in the cities where the Japanese lived mainly, and the towns where the Japanese were concentrated(北村). Also they were held in the cities of the Nothern Korea where the Authorities took the notice of their political symbols. Finally, they had the distinct feature case-by-case. The Lecture, the Lesson and the Movie were held until the end of the War. In comparison, the Exhibition were held intensively in the early days of the War time and the number of times was few. Also, it was overly weighted an certain area such as Kyungsung-Bu(京城府) and the region of the Nothern Korea. In comparison with the Lecture and the Movie, the Exhibition could approach the Choshenese easily, so it had a tremendous propaganda effect. But it spent a lot of money and manpower, and had the problem of a travelling exhibit. So, it was hard to open at a wide area and more frequently.
한국어
『매일신보』를 통해 살펴 본 일제하 식민지 조선의 방공정책과 프로파간다 정 혜 경 『매일신보』는 식민지 시기에 가장 오랫동안 발간된 국한문신문이었다. 특히 1910년대와 전시체제기에는 유일한 국한문신문이었다. 그러나 독자층이 제한되었고, 조선총독부기관지라는 점으로 인해 일본의 동향과 당국의 통치방향을 전파하는데 활용되었다. 『매일신보』에서 방공관련기사는 5천 건이 넘으며 게재 시기는 만주사변 이후 전시체제기에 걸쳐 있다. 그 가운데 방공정책의 프로파간다 관련 기사는 361건 정도이고, 1932년부터 1945년까지 실렸다. 이 기사를 통해 당시 당국이 식민지 조선사회에 보급하고자 한 방공정책의 내용과 방법을 파악할 수 있다. 이 가운데 대표적인 선전 수단(강연, 강습, 영화, 전람회 등)을 통해 프로파간다의 내용을 살펴보면, 첫째 방공관련 프로파간다는 만주사변과 중일 전쟁 등 전세가 일본에 유리한 상황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전개되었다는 점이다. 1944년 일본 본토가 공습의 위험에 노출된 이후에는 선전관련 기사의 게재수가 줄어들었다. 그 대신 늘어난 기사는 공습상황에서 가정이 담당할 역할에 대한 실무를 제시하는 정보 제공 기사와 사회를 안정시키는 목적의 기사이다. 둘째, 프로파간다의 주요 대상자는 일본인과 일본사회였음을 알 수 있다. 강연과 강습, 영화 상영은 일본인 거주지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개최 장소도 전람열차를 제외하면, 주로 조선인들이 접근하기 쉽지 않은 곳에서 열렸다. 강사들도 조선군 장교나 관련 기관의 구성원들이었다. 일본인들이 주로 거주하는 도시와 밀집 거주지(북촌), 그리고 당국이 정치적 상징지역으로 주목했으며, 사상악화지대라 평가하던 한반도 북부 지역의 도시들이었다. 셋째, 매체에 따른 특징을 볼 수 있다. 강연과 강습, 영화 상영이 전시 말기까지 실시된 데 비해 전람회는 전시체제기 초기에 집중되었고 개최회수도 적었다. 지역적으로도 경성부나 한반도 북부지역 등 특정지역에 치우쳤다. 전람회는 영화나 강연에 비해 조선 대중의 접근성이 높았고, 그에 따라 선전 효과도 높았으나 비용과 인력이 많이 투입되어야 했고, 이동 전시의 어려움이 있었으므로 광범위한 지역에서 자주 개최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목차
Ⅱ. 일본의 방공체제와 식민지 조선
Ⅲ. 『매일신보』 기사로 본 일제시기 방공정책과 프로파간다
1. 연도별 주제별 기사 현황
2.『매일신보』기사로 본 일제시기 방공정책과 프로파간다
3. 한반도 거주민의 반응
Ⅳ.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