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정보
초록
한국어
본 논문은 ‘유배(流配)’가 일본 상대문학(上代文學) 한시(漢詩)・와카(和歌)에 어떻게 표출되고 있는지를, 이소노 가미노 오토마로(石上乙麻呂, いそのかみのおとまろ, 이하 ‘오토마로(乙麻呂)’)의 유배관련 한시(漢詩) 및 와카(和歌)의 특징과 상호적인 의미를 통하여 고찰해 보고자 한다. 상대문학(上代文學)작품 『회풍조(懐風藻)』(751)와 『만엽집(萬葉集)』(630~760)은 공통적으로 오토마로(乙麻呂)의 유배 관련 노래만이 실려 있어 일본 유배문학을 고찰하는 단초가 된다. 일본의 유형 제도는 당의 율령제도의 도입으로 시작한다. 유형은 율(律)에 따라 정한 5형 중의 하나이다. 유배(流配)를 모티브로 하는 작품의 초출(初出)은『일본서기(日本書紀)』(720)에서 「卜者曰、有内乱。蓋親々姦乎」로 시작되는 부분이다. 인교천왕 24년(允恭天皇 24年, 435) 가루노 히쓰기노 미코(軽太子, かるのひつぎのみこ, 이하 ‘가루노 미코(軽太子)’)와 가루노 오이라 쓰메(軽大郎女, かるのおおいらつめ, 이하 ‘가루노 이라쓰메(輕郎女)’)는 오누이간의 금단(禁斷)의 사랑으로 유배된다. 가루노 미코(軽太子)의 유배의 원인이 간통이라는 남녀 관계였다는 점이 주목되는 대목이다. 또, 일본의 최초의 한시집(漢詩集)인 『회풍조(懐風藻)에는 오토마로(乙麻呂)가 도사(土佐)로 유배되었을 때의 네 수가 있다. 또, 와카집(和歌集) 『만엽집(萬葉集)』에는 아미노 오오키미(麻続王, おみのおおきみ)노래군(1권/23, 24), 오토마로(乙麻呂)가 도사(土佐)로 유배될 때의 노래군(6권/1019~1023), 나카토미노 야카모리(中臣宅守, なかとみのやかもり)와 사노노 지가미노 오토메(狭野茅上娘子, さののちがみのおとめ)의 증답가(贈答歌) 군(群)(15권/3723~3785)을 들 수 있다. 이와 같이, 오토마로(乙麻呂)의 유배는 상대문학(上代文學)작품 『회풍조(懐風藻)』와 『만엽집(萬葉集)』에 문학적 소재로 쓰일 정도로 세인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것이다. 물론, 이는 오토마로(乙麻呂)가 용모(容貌)・문재(文才) 모두 뛰어난 당대를 대표하는 명문가 귀족이면서도 정치적 비극의 주인공이라는 점이 그 비극성을 한층 더 배가시켰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먼저, 한시(漢詩) 네 수는 유배 당사자인 오토마로(乙麻呂)가 읊은 것인데, 제 1수와 제 2수는 비록 유배지에 있어도 정적(政敵)에 대한 원한은 보이지 않는다. 한시문학(漢詩文學)의 세계인 ‘시(詩)는 생각을 드러내는 지(志)(詩は志なり)’라는 지식인으로서 냉정함을 유지하면서 당시의 풍류인을 상징하는 ‘고토(琴, 거문고)’를 공공연하게 가지고 노는 우아함이 보인다. 그러나 제 3수에서는 계절의 변화와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지식인으로서의 고독감을 느끼며 원한은 더욱 더 깊어진다. 이어지는 제 4수에서는 지적인 생각(志)은 사라지고, 그 대신에 저녁부터 새벽 사이에 정(情)의 세계에 대한 번민을 호소한다. 원래, 한시(漢詩)의 세계에서 남성이 자신의 사랑을 표출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픽션상의 것이었다. 따라서 오토마로(乙麻呂)의 정시(情詩)는 한시(漢詩)의 명맥을 계승한 것이 아니라, 와카(和歌)에서 표출되고 있었던 감정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살펴보면, 오토마로(乙麻呂)에게 유배라는 절망적인 시간의 심정은 외래(外來) 한시(漢詩)의 형식만으로는 표현할 수 없었던 것이다. 와카(和歌)에서는 여행의 수호신에게 가호를 기원하는 형식으로 유배가 표현되어 있다. 이는 사건 당사자인 오토마로(乙麻呂)의 노래가 아니고, 그를 ‘미코토(命)’로 경칭하는 제삼자가 여행의 풍속적인 요소를 도입하여 와카(和歌)가 가진 ‘여행(旅)’이라는 전통적인 형식을 빌어 유배라는 주제를 구성하고 있다. 따라서 한시(漢詩)에서는 유배지에 있는 오토마로(乙麻呂)자신의 심정표출 및 도읍지를 향한 심정, 그리고 도읍지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정념이 표현되어 있었다고 한다면, 와카(和歌)에서는 오토마로(乙麻呂)의 유배라는 비극적인 상황에도 불구하고 오토마로(乙麻呂) 개인의 격렬한 내면적 감정을 표출하지 않고, 제삼자가 유배지로 가는 오토마로(乙麻呂)의 여정을 설명하면서 여행의 안전과 가호를 기원하는 표현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상과 같이, 8세기 일본 문인들은 오토마로(乙麻呂)의 유배사건의 문예화(文藝化) 과정을 통하여 표현과 시정(詩情)을 달리하는 한시(漢詩)와 와카(和歌)를 어떤 식으로 자기화(自己化)했는지 엿볼 수 있었다.
일본어
本論は「配流」という主題が漢詩・和歌というジャンルの異る上代文学作品において如何に表出されているのかを考察するものである。日本における流刑制度は唐の律令導入に始まると考えられるが、流刑は律における五刑の1つで、初めて記録の中に現れるのは、「卜者曰、有内乱。蓋親々姦乎」に始まる允恭天皇24年(435)の軽太子と軽大郎女の同母兄妹の愛の露見であるが、この 軽太子の流配は姦通という男女間の関係が起因となっている点が注目される。また、漢詩集『懐風藻』での配流に関する詩としては、石上乙麻呂が土佐に配流された時の四首が、和歌集『萬葉集』には麻続王歌群(巻一/23、24)、石上乙麻麻呂が土佐へ配流される時の歌群(巻六/1019~1023)、中臣宅守と狭野茅上娘子との贈答歌群(巻十五/3723~3785)があげられるが、『懐風藻』『萬葉集』という上代韻文に共に石上乙麻呂の配流が主題とされていることは、この時代において彼の配流は重要な文学的モチーフとなっていたことを示している。それほどこの事件は当時の人々の耳目を集め、深く心に留められていた。それは石上乙麻呂が当時を代表する名門の容姿・文才共に優れた貴族でありながらも、政治的悲劇の主人公であったことに大きく起因している。漢詩は配流の当事者石上乙麻呂によるものである。最初の二首ではたとえ配流の地にあり、政敵への怨はあっても、漢詩文学の世界である「詩とは志」という知識人として冷静さを保ちつつ、当時の風流人を象徴する「琴」を弄ぶ優雅さを述べる。しかし、第三首では季節の移り変わり時間の流れに従い、知識人として孤独感から怨は益々募る。やがて、第四首では志は消え去り、夕方から朝に掛けての情の世界への悶えを訴える。漢詩の世界での男性の愛の表出とはあくまでもフィクション上のものであった。石上乙麻呂は配流という絶望の時間の心情表現を外来の漢詩がもつそのままの形式ではなく、男女の相愛を男性も詠むという和歌の手法を取り入れているのである。一方、和歌の世界での配流は石上乙麻呂にかかわる歌の前にも後にも歌われている。しかし、奈良の都から配流地である土佐への移動が、それぞれの要所での旅の守護神の加護への祈りとしてあるのはこの歌群のみであり、旅の風俗の要素を取り入れつつ配流という主題が「旅」の歌として、和歌の世界の伝統に基づき構成されている。このように石上乙麻呂の配流事件の文芸化からは、漢詩と和歌という表記方法・内包されている詩情も異るものがを8世紀の文人たちが如何に自己化していくのかを窺うことができるのである。
목차
I. 들어가기
II. 이소노 가미노 오토마로(石上乙麻呂)의 유배배경과 인물상
III. 이소노 가미노 오토마로(石上乙麻呂) 유배 관련 한시(漢詩)ㆍ와카(和歌)
IV. 나오기
參考文獻
要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