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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원청규』와 한국불교의 나아갈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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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n Center Golden Rules and the future way of Korean Buddhism

이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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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영어

Korean Seon Buddhism has many remarkable advantages. Our Buddhism culture still has spirit and authenticity of patriarch Seon Buddhism in Sui and Tang dynasty when is called Golden ages of Seon. Thereby, our Buddhism only, specifically saying, Ganhwa Seon maintains independent and originative culture at world best level among 3 nations in the Eastern Asia. Furthermore, even Seon Center Golden Rules was published, which had been so craved. Therefore it could be said that an opportunity has been arranged for bhikshus the Jogye order to become a Buddhist and social example to maintain clean Jogye family tradition in the practice and a daily life through implementation in the field. With the publication of Seon Center Golden Rules, Korean Buddhism should become ‘Buddhism for the four-fold assembly’ from ‘Buddhism for person who does renunciation’ through ‘great change of recognition’ in the future. Accordingly, fundamental reflection and contemplation for the future is needed. It would be necessary to remind that all the Golden rules including Golden Rules of Pai-Chang then was a choice to go towards the future not to bind reality for returning to the past. To be Buddhism for the four-fold assembly, Now Korean (Seon) Buddhism has a fatal and urgent problem which should be improved. Korean Buddhism has a tendency of elite Buddhism to ‘edify all being’ rather than to ‘participate in a life of all being’. What is a true deed of Bodhisattva? Is it participation or edification? I dare to say it is ‘participation.’ In this sense, consciousness of saving world for Korean (Seon) Buddhism should be participation consciousness on the street in the world not elite consciousness of the enlightened person. Accordingly, the street where many people live should be a place of practicing for Seon master. If person who practices Seon adheres to practicing only in a quiet place in a mountain, it would be like living alone without doing anything. Korean Buddhism should not wait for visit of all being but should communicate with the world on the street and act in the midst of the world together with all being.

한국어

한국의 선불교는 많은 특기할 만한 장점을 가지고 있다. 우리의 불교문화는 아직까지도 선학의 황금시대였던 수당대의 조사선 불교의 정신과 진정성을 아직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세상에 자랑할 만하다. 뿐만 아니라 지금도 많은 도량에서는 눈 푸른 납자들이 ‘一大事’에 대한 원대한 희망을 가지고 수행에 전념하고 있다. 한 선지식의 지혜가 만년의 어리석음을 없앤다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그 미래 종안정사들의 용맹정진은 너무나도 고맙고 가슴이 떨리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불교, 더 나아가서 간화선이, 세계 최고 수준의 독자적이고도 독창적인 고급문화를, 동아시아 3국 중에서, 아직까지도 유일하게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다가 그동안 목마르게 갈구하던 『선원청규』까지 발간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현장에서의 실천을 통하여 조계종단의 스님들이 수행 및 살림살이에서 조계 가풍의 청정함을 견지하면서 불교적․사회적 귀감이 될 수 있는 계기는 이미 마련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제 『선원청규』의 찬술을 하나의 기회로 하여 한국 불교는 앞으로 ‘출가자의 불교’에서 ‘사부대중의 불교’로 ‘인식의 대전환’을 해야 한다. 따라서 미래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과 고민이 필요하다. 이 점 당대의 『백장청규』를 포함하여 모든 청규가 미래를 지향하여 앞으로 가기위한 선택이었지, 과거로 가기위해 현실을 묶어두려는 선택이 아니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현재 한국의 (선)불교는 사부대중의 불교가 되기에는 치명적이면서도 개선해야만 할 당면문제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한국 불교가 ‘중생의 삶에 동참’하기보다는 ‘중생을 교화’하려는 엘리트적 경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진정한 보살행은 동참일까? 교화일까? 나는 감히 ‘동참’이라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 (선)불교의 구세의식은 깨달은 자의 우월의식이 아니라, 저자거리에서의 동참의식이 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진정한 의미의 깨어있는 선수행자는 구원이나 시혜의식이 없어야 하며, 자기희생이 전제된 채 入泥入水하는 ‘중생과 더불어 삶’이라는 동류의식을 갖춘 보살이 되어야만 한다. 따라서 사람들이 많은 저자거리가 바로 선사들이 공부하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 선 수행자가 산 속 고요한 곳에서 공부하는 것만을 고집하는 것은, 옷 벗어 놓고, 오장 육부 속의 생명들도 다 꺼내 놓고, 땅도 딛지 말고, 물도 먹지 말고, 나무도 베지 말고, 아무것도 하지 말고, 혼자 사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한국 불교는 중생이 찾아오기를 기다리면 안 된다. 조금 더 저자거리로 중생을 찾아나가서 세상과 소통하고 그 속으로 파고들어서 중생과 더불어 세상 속에서 행동하여야만 한다.

목차

국문요약문
 1. 들어가는 말
 2. 조계종『선원청규』찬술의 함의
 3.『선원청규』와 대승불교
 4.『선원청규』와 조계종
 5.『선원청규』와 간화선
 6. 나가는 말
 Abstract
 참고문헌

저자정보

  • 이덕진 Lee, Deok-Jin. 창원문성대학 교수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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