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정보
초록
한국어
己亥使行은 그동안 申維翰의 ꡔ海遊錄ꡕ을 제외하면 그다지 주목 받지 못하였다. 18세기 초에 이르러 朝日關係가 안정을 보이고, 비록 조선에서는 小中華意識이 고착되어 가는 시점이나, 신유한의 ‘순수한 관찰자적 시점’이 획득된 사행이 기해년이었다. ꡔ해유록ꡕ은 그 같은 신유한의 현재를 잘 보여준다. 그러나 신유한의 보고인 ꡔ해유록ꡕ만 아닌, 일본 쪽에서의 기록 곧 ꡔ蓬島遺珠ꡕ와 ꡔ客館璀粲集ꡕ같은 책을 통해 그의 사행이 가진 의의를 다시 살필 필요가 있다. 뒤의 두 책은 기해 사행단이 나고야에 머문, 에도로 향하던 길의 9월 16일과 돌아가는 길의 10월 25일 밤을 그리고 있다. 이 논문에서는 ꡔ해유록ꡕ에 남기지 않은 신유한의 시와 산문을 두 책에서 찾아 처음으로 소개하며, 신유한의 나고야 滯在와 그 의의를 재구하였다. 신유한은 기해 사행 길에 나고야에서 이틀 밤을 묵었다. 그러나 에도로 가는 길에 머문 하룻밤은 와병으로 필담다운 필담이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돌아오는 길의 단지 하룻밤이 그를 상대한 館伴으로 하여금 각각 한 권의 책을 낼 만큼의 깊은 인상을 남겼다. 밤 새워 나눈 시와 이야기, 이별을 슬퍼하고, 알건 모르건 사행단과 관반 사이에 인사를 나누는 마무리—아침 해가 떠오르자 ‘꿈에서 막 깬 듯하였다’는 하룻밤 밤샘의 경험은 사행의 정치적 굴레와 상관없이, 문사의 자유롭고 感慨스러운 교류 속에 얻은 어떤 문화적 만남의 극점처럼 보인다. 신유한은 신유한대로, 館伴은 그들대로 각자 겪은 사행의 일을 자신의 관점에서 적었다. 확대와 축소가 교차한다. 모르긴 해도 그것은 주변의 눈을 의식한 결과일 것이다. 우리는 거기서 생긴 그들의 겉과 속을 보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文士間의 의기투합은 文士만의 특권이었다. 아침 햇빛에 빛나는 황홀한 꿈이었다. 여기서 18세기 朝日 사이에 만들어진 하나의 문화적 풍경을 읽을 수 있다.
일본어
己亥使行に対しては、その間、申維翰のꡔ海遊録ꡕを除けば、あまり注目され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18世紀初に至って、朝日関係が安定を見せて、たとえ朝鮮では小中華意識が固着して行く時点であるけど、申維翰は‘純粋な観察者の時点’を獲得するのに成功した。ꡔヘユロックꡕはその同じ申維翰の現在をよく見せてくれる. これは申維翰の活動とꡔ海遊録ꡕが持った価値にふさわしい評価だったが、己亥使行が申維翰一人だけの成果ではない、使行全体の性格究明のために、また振り返る必要がある。この使行だけの特徴的な事案が見えるからだ。 申維翰の表がꡔ海遊録ꡕで現われたら、その裏を表示のためにꡔ蓬島遺珠ꡕとꡔ客館□粲集ꡕを察しようとする。二つの本は己亥使行団が名古屋に泊まった、江戸に向けた道の9月16日と帰る途中の10月25日夜を描いている。 ここで裏と言うことは単純に知られなかった他の記録を言うだけだ。事実や本当の次元ではない。私たちには長い間、申維翰の記録だけで申維翰の行績を伝えて聞いた。それで自分的で優越的な態度を勘案して入っても、何がどんなにそうか確かに分かりにくかった。ちょうど同じな日夜の仕事を詳らかに書いた'あちら'の記録はここで一定するように役目する。この役目を裏だとしよう. 別離を悲しんで、分かるのは分からないとか、あいさつを交わすこのひと晩徹夜の仕上げ―朝日が浮びがろう‘夢でちょうど覚めたようだった’という経験は、使行の政治的くびきと構わずに、文士の自由で感慨的な交流の中に得た、どんな文化的出会いの極点のように見える。 申維翰は申維翰なりに、木下は木下なりに、彼らが経験した使行の仕事を彼らの観点で書いた。拡大と縮小が交差する。分からなくはあっても、それは周辺の目を意識した結果であるでしょう。私たちはそこで生じた彼らのそんな表と、だまされる彼らが各々残した記録を対照して見ながら分かった。それにもかかわらず、文士間の意気投合は文士だけの特権だった。朝日の光に輝く慌惚な夢だった。ここで18世紀、朝日の間に作られた一つの文化的風景を読める。核心語 : 己亥使行, 申維翰, 海遊錄, 蓬島遺珠, 客館璀粲集, 木下蘭皐, 朝比奈玄洲, 名古屋
목차
1. 머리에
2. 신유한과 海遊錄 논의
3. 蓬島遺珠와 客館璀粲集에 대하여
4. 나고야에서 두 번의 밤
(1) 9월 16일 : 客苦가 겹친 심드렁한 밤
(2) 10월 25일 : 교류의 극점에 선 感慨
5. 마무리
참고문헌
日文要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