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정보
일제하의 식민 공업화에 관한 경제사적 고찰 (1920 - 1945)
초록
한국어
본 연구는 식민 통치하에서 행하여진 공업화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1920년에서 1945년으로 하는 기간만 보아도 연구의 목적은 파악된다. 일본에 의한 식민통치는 1910년에 시작되는데도 시기를 1920년으로 정하고 있는 의도가 이를 증명하여 준다. 식민주의자들은 식민지가 공업화 되려는 움직임 마저도 가능한한 억제하고 있다. 이는 산업시설을 이전시켜 놓으면 상품을 투입시키기가 어려워지는데 있다. 일본은 “회사령”을 발동하여 공업화를 저지하여 왔다. 조선인들은 기업을 운영하려면 아직은 기술과 경영의 능력이 부족하니 총독부가 지도, 감독을 하겠다는 구실로 허가를 받은 자 만이 공장을 설립할 수 있다는 엄격한 조치였다. 회사령은 일본의 사정이 변화하자 1920년 4월 1일에 폐지되게 된다. 1910년대 말
부터 일본에서 자본이 계열화되기 시작하였다. 일본내에서 퇴출되는 기업이 발생하게되자, 이를 구제하려고 식민지 조선에 투자시장을 개척하려 하였다. 회사령이 걸림돌이 되자 즉각 철폐한 것이다. 이로 인하여, 1920년대에 조선이 공업화되기 시작하였으나 대자본은 진출하지 않아 기업의 규모는 적었다. 다 단계인 1930~1937년에는 일본본토에서 투자여건이 악화되자, 독점자본이 들어왔다. 경공업을 중심으로 공업화가 가속화되게 되었다. 마지막 단계인 1937~1945년에는 주축 산업인 중화학 공업이 이식되어, 총독부가 설치되어 있는 경우로서는 세계 최초로 중화학공업국이 되는 기록을 세웠다. 이로써 공업 생산액이 농업을 능가하여 조선은 공업국이 되었다. 깊이있게 사고하여 분석하지 않으면 일본에 의하여 식민지 조선이 단계적으로 발전되었다는 견해에 설득되게 된다. 수탈론이 아닌 일본의 제국주의에 의한 경제발전론을 말한다. 1920년에는 공업화를 시작하여 기반을 마련하여 주었다. 다음 단계에서는 경공업이 육성되었다. 마지막 단계에서는 중화학 공업이 안착되었으니, 경제를 균형 잡아준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공업화를 시키려는 목적이 일본의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였다. 조선의 사정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산업구조가 다양한데도 공업이 2가지 분야로만 집약되어 있음이 증명하여 준다. 먼저 일본의 발전을 보조하여 주는 보충공업이다. 다음으로는 일본이 관심을 두지않는 무관심공업에 종사하는 것은 가능하였다. 그렇다 하여도 보충공업에 비하여서는 투자가 활발하지 못하였다. 2가지 분야 이외에는 발전이 봉쇄되었다. 따라서 일본에 대한 종속은 다양화되고 견고하여만 갔다. 1945년의 독립후에 식민주의자들이 남겨준 잔재를 우선적으로 청산하였어야 하였다. 그러나 근본문제를 해결하지 않은채 경제발전이 급진적으로 이루어졌다. 원하는대로 고도성장은 이루어졌는데도 구조적인 문제가 악화되어 경제발전이 마무리되지 못하고 있다. 식민통치가 끝난지 50년 이상이 지났다 하여도 경제발전을 억제하는 결정적인 요인은 식민잔재에 숨어있다. 따라서 경제사적 연결성을 중시하여 찾아내서 바로잡지 않으면 같은 문제는 반복될 수 밖에 없다. 독자적인 경제발전은 더욱 기대하기도 어렵다.
이같은 이유에서 식민공업화는 1920년에서 1945년까지 25년동안 추진된 경제사적 사실에 불과하지만 계속적으로 연구되어야 한다.
목차
II. L'INTERVENTION DU CAPITALISME.
III. LE DEMARRAGE DE L'INDUSTRIALISATION(1920-1930)
IV. L'ACCELERATION DE L'INDUSTRIALISATION PAR L'INVESTISSEMENT MONOPOLISTIQUE JAPONAIS.(1930-1937)
V. LE CHANGEMENT DU MODE D'INDUSTRIALISATION : LEDEVELOPPEMENT DE L'INDUSTRIE LOURDE CHINIQUE(1937-1945)
VI. CONCLUSION
Bibliographie
국문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