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정보
초록
한국어
최근 數年의 韓·蒙諸般關係의 급속한 發展과 蒙古를 포함한 舊社會主義陣營의 극심한 經濟·社會的危機로 말마암아 多數의 蒙古人들은 부득이한 사정으로 來韓하여 國內에서 不法勞動行脚을 벌이게 되었다. 정확한 統計가 없어서 이들 蒙古人滯韓 不法勤勞者의 總數도 잘 알 수 없는데, 1997년도의 <出入國管理統計年譜> (法務部 發刊)에 의하면, 當年의 蒙古人短期不法滯留者의 數가 7,640名에 達하였다 (310面參 照). 이로 봐서는 短·中·長期蒙古人不法滯留者의 總數는 萬名안팎으로 추정되는데, 그들 중에서 대부분은 零細業體에서 筋肉勞動에 從事한다. 筆者(박노자)는 建國大學校附屬社會敎育院의 外國人勞動者日曜日大學에서 自 願奉仕者로서 1년반 동안 蒙古人을 爲始한 諸國勤勞者들에게 韓國史를 敎授해 왔는 데, 이 因緣으로 滯韓蒙古人勞動者와 親分의 關係를 가지게 되었다. 이렇게 되어 15 명의 日曜日大學學生인 蒙古人不法勤勞者에게 그들의 韓國文化觀에 대한 小規模 의 設問調査를 하게 되었고, 이 설문조사의 결과를 이하에서 간단히 발표하고자 한다. 조사 對象은 20대 (9명), 30대 (6명)이었고, 대부분은 (12명) 高卒이었으나 약간의 大卒(3명)도 있었다. 대부분은 1-2년간의 滯韓경험을 가지고 있고, 한국어 日常會 話에 능통하다. 조사 대상자 全員은 喇嘛敎信徒를 自許한 관계로 불교 관계 질문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조사 대상자 중에서 露語能通者4명이 있어서 조사를 동시에 露 語와 蒙古語로 진행할 수 있었다. 제1문제는 “한국 사회의 위계질서 (연장자 - 연소자 관계; 상사 - 부하 관계 등)를 어떻게 인식하는가”이었다. 이러한 질문을 하게 된 배경은, 연령과 사회 신분에 의한 위계질서와 그에 동반되는 언어적 현상 (연소자에 대한 “반말” 사용, 연장자에 대한 존칭 사용 강요)은 보통 歐美圈出身의 滯韓者들에게 한국 문화에 대한 제1 不滿要素 로 꼽혀 왔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몽고인들이 한국式위계질서를 이론적으로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그리고 이 위계질서의 현실적인 운영 실상을 어떻게 보는가 등을 알아 보고자 하였다. 이 질문에 대해서는, 응답자들은 한결같이 “연령·직장 상·하 관계에 의한 위계질서 가 當然之事”라고 자신있게 확답하였다. 蒙古의 사회 질서도 대저 흡사한 원칙을 기반 으로 한다는 것은 응답자의 公論이었다. 한국의 敬老·孝道사상 등을 몽고 사회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어 한국 문화에 대한 친숙함을 느낀다는 대답도 압도적으로 많았다. 몽고의 師弟관계 전통도 한국의 君師父一致문화와 대거 매우 흡사하여 正初의 恩師 宅訪問등의 한국 풍습들을 몽고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는 것은 대부분의 대답이었 다. 웃어른을 만나면 절해야 한다는 한국의 관습에 대해서 “안타깝게도 요즘 많이 사 라진 우리 고유의 美風良俗”이라고 평가하는 응답자도 있었다. 한마디로, 한국의 연장 자·상사에 대한 恭敬의 원칙이 滯韓蒙古人勞動者에 의해서 전적으로 받아들여진다는 결론 을 내릴 수 있는 것 같다. 한국의 직장에서의 인간 관계와 관련해서 주요 不滿要素들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아무런 불만도 없다”고 대답한 3명을 제외한 나머지 응답자들은 “한국인 年 下者·동료로부터의 적당치 못한 待遇”라고 답하였다. “적당치 못한 대우”라는 것이 구 체적으로 어떤 것을 의미하느냐라는 보충 질문에 대해서는 주로 “나이에 걸맞는 대접 을 받을 것으로 기대했으나, 외국인 불법 체류자라서 연하자들도 보통 반말로 이야기 한다”, “연하자들이 한국인 연장자들에게 통상 형님과 같은 존칭을 쓰는데 우리에게 기껏해봐야 아저씨라고밖에 부르지 않는다” 등의 대답을 듣게 되었다. 8 명의 응답자 들은 “나이 차이도 비록 크지 않으나 상사·동료로부터 상습적으로 욕설·상소리를 들어 야 한다”는 것에 대한 불만을 표하였다. 전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한국식 연령 위주 의 위계질서의 원칙을 매우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蒙古人들은 자신들의 불리한 신분 과 관련되는 이 질서의 違反(연하자로부터의 “반말” 등)의 경우에는 상당히 강력한 拒否反應을 나타낸다. 끝으로 “한국인에게 바라는 사항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서 2-3명을 제외한 대다수의 응답자들은 “우리가 한국인과 똑같은 존재들이라고 假定 하여 우리 나이에 알맞게 우리를 한국식으로 대해달라”고 대답하였다. 한국인 동료의 행동 양식에 어떤 문제점들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7 명의 응답자들은 “상사에 대한 지나친 阿附·阿諂·迎合”이라고 답하였다. 阿附·阿諂의 구체적인 事例를 提示해달라는 부탁에는, “상사에게 자신이 해낸 일에 대해서 誇張되게 이야기하는 것 이 다반사다”, “상사가 없는 사이에 일을 잘 안하다가 상사가 나타나자 열심히 일하는 것을 假裝한다”, “자신의 ‘몸값’을 높이기 위해서 상사 앞에서 일부러 우리와 같은 외 국인을 가르치는 척한다”, “미움받는 상사에 대해서도 인위적으로 인사치례를 너무 번 잡하게 챙긴다” 등의 답들을 듣게 되었다. 이러한 행위의 원인을 무엇으로 생각하느냐 는 질문에는 “解職에 대한 恐怖”, “상사에 대한 종속 관계를 지나치게 의식하는 관 습”, “자본주의적인 인간 관계의 物化” 등의 대답이 나왔다. 여기에서 흥미로운 것은, 응답자들이 阿附와 같은 現象을 한국의 전통이 아닌 현대 사회의 보편적인 사회·경제 적 질서와 연결시키려는 태도를 단적으로 보였다. 한국 사회에 대한 지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繁文縟禮가 過度하다”, “禮儀凡節이 번거롭다” (2 명), “行動樣式에 있아사는 識者層과 庶民層이 天壤之差다” (1 명) 등의 흥미로운 대답들이 있었다. 전체적으로 봐서는, 응답자들은 연령·교육·신분에 의한 한 국의 전통적인 위계질서에 대해서 극히 긍정적인 반응을 나타내면서, 자신들의 불리 한 신분으로 인해서 이 질서 속에서 적절한 위치를 차지하지 못한 데 대한 강한 불만 을 표하였다. 그리고 자신 주위에서 경험할 수 있는 부정적인 현상들 (强者에 대한 弱 者의 自己卑下的態度, 禮節의 形式化등)을 한국의 전통이 아니라 현대 사회·경제적 환경에 의한 전통의 파괴와 연결시켜서 이해해 보려는 자세도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이러한 이해의 자세는 일상 생활의 부정적인 측면의 궁극적인 根源을 “儒敎”와 “민족 주의”, “배타주의”에서 찾으려는 영미권 출신의 滯韓외국인의 일반적인 태도와는 대 조적이라 볼 수 있다. 來韓以前의 期待水準에 比해서 實際韓國生活에 대한 滿足度가 어느 程度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응답자들은 異口同聲으로 “기대에 훨씬 못미친다”는 대답 을 하였다. 구체적으로는, “한국을 最新技術로 가득찬 最高先進國家로 想像하였는 데, 실제적으로 아직 막노동의 비중이 너무 크다”, “우리와 달리 한국에서 詐欺犯罪 나 不當勞動行爲가 없는 줄로 생각하였는데, 실제로 不法賃金滯拂現象에 부딪치 게 되어서 너무 실망스러웠다”, “先進國으로 생각되었던 韓國에서도 우리 나라처럼 人 間冒瀆, 毆打, 酒癖등이 있다는 걸 꿈에서도 想像못하였다” 등의 대답들이 대표적 이었다. 응답자의 대다수 (13 명)는 賃金不當滯拂, 賃金詐欺, 賃金不當削除, 使用 者側의 常習的毆打·醜行등의 人權侵害行脚에 직접 부딪친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도 응답자들은 “우리 나라 基層社會에서도 그러한 事件들이 非一非再하다”, “우리 나라에서 불법 외국 노동자의 생활 與件이 더욱 劣惡했을 것이다”, “不當勞動 行爲가 初期資本主義의 普遍的現象이니 韓國만을 罵倒할 이유가 없다”, “한국이 외 국으로부터 자본주의가 식민지 시기에 移植된 불행한 나라인데 어찌 短期間內에 유럽 先進國들을 따라잡을 수 있겠느냐” 등의 대답을 통해서 한국의 人權문제를 긍정적으 로 이해해보려는 태도를 내비쳤다. 일부의 응답자 (3 명)는 “우리 한국 동료도 임금 체불과 주인의 비인간적인 待遇에 시달리는데, 우리만 고생한다고 어찌 볼 수 있겠느 냐”라고하여 자신이 직면하는 문제의 보편성을 강조하였다. 대답의 이러한 경향으로 봐서는, 來韓以前에 韓國의 社會·經濟的發展水準을 상당히 過大評價하였던 응답자 들은 외국 노동자 인권 박탈 상황을 悲觀하면서도 感情的인 對應을 最大限自制하며 이 事情의 不可避함을 客觀的으로 認定한다. “우리가 不法滯留嫌疑로 逮捕되어 本國 送還되지 않는다는 것도 感之德之할 일이니 不滿이 잇어도 不平할 마음은 없다”는 것 은 응답자 全部의 共通的인 意見이었다. 異質的環境에 처해 있는 극소수의 異邦人인 몽고인 불법 체류자들이 최선을 다하여 感情의 爆發을 抑制해 가면서 불리한 상황을 適應力과 理解力으로 극복해 보려는 자세는 단적으로 표현되었다. 이외에는 응답자들의 한국 종교 문화에 대한 親熟度를 알아보기 위해서 “한국 儒 敎·佛敎에 대해서 아는 것이 있느냐”는 질문을 하였다. 놀랍게도 儒敎에 대해서 대부 분이 “명칭만 들었을 뿐이지 내용 아무것도 모른다”고 일제히 답하였다. 구체적인 대 답은 “元나라 시기의 중국 철학”, “중국 개념” (2 명)의 정도이었다. 응답자들은 경험 적으로 익히 알고 있는 한국式위계질서가 儒敎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생각을 전혀 갖지 못하였고, 이 “중국 개념”이 한국 사회 문화의 기간을 이루었다는 사실을 몰랐 다. 이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처럼, 非漢字文化圈出身의 外國人滯韓者들은 韓國儒 敎의 基礎라도 익히는 데 커다란 支障이 있어, 이들에게 한국 사회에 대한 체계적인 이해를 기대하기는 무척 어렵다. 한국 불교에 대해서는, “한국에 佛者가 많다” (1 명), “한국 사찰에 우연히 간 적이 있다” (2 명), “한국 佛者들이 佛心은 너무 강해 祈禱를 우리에 비해서 참 자주 한다”( 1 명) 등의 대답이 있어, 역시 佛者들인 蒙古人들에게 는 한국 불교가 儒敎에 비해서 덜 이질적이었다. 그러나 한국 僧侶를 한 번이라도 접 촉하거나 기도할 목적으로 한국 사찰을 방문한 적이 있는 자가 응답자 중에서 한 명 도 없었다는 사실로 봐서는, 불교도 아직 滯韓몽고인들과 한국 문화 사이의 架橋역 할을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그런데도 “한국 佛像앞에서도 자연스럽게 祈禱할 수 있느냐”라는 질문에 “부처님은 똑같은 거니까 당연히 하겠다”는 대답으로 봐서는 몽고인의 한국 사회 적응 과정에서 불교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수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아직까지 불교에 비해서 몽고인들에게 국내에서 더 적극적으로 접근하 는 것은 개신교이었다. 일부 교회에서 失職蒙古勞動者들에게 宿食을 提供해 준 것 에 대해서는 모든 응답자들은 진지한 고마움을 나타냈다. 전통적인 몽고인 價値觀에 서 “謝恩”, “報恩”의 개념이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는 사실을 고려하면, 한국 교회들의 이러한 慈善事業은 차후에 蒙古內宣敎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한국 사회에 대해서 가장 놀랐던 점이 무엇이었느냐는 질문에 “‘우리 나라‘, ’우리 민족’이라는 말을 주술처럼 맨날 들먹거리면서도 중국 동포들을 우리에 비해서도 더 욱 더 학대하는 것은 二律背反이 아니냐“, ”사람의 얼굴을 봐서 ‘재수 있다’, ‘재수 없 다’라고 판단하여 이에 따라서 그 사람을 대하는 것이 우리 나라와 비슷하면서도 조 금 특이하다”, “태극기의 음양 결합 상징이 우리의 арга-билэг 상징과 아주 비슷하 다”, “공사장에서 공장에 비해서 아부쟁이들이 덜 있다. 日當雜夫라서 什長과의 관계 가 永續的이지 않기 때문인가?” “한국 시골에서 생활 여건이 그렇게 안좋은 것을 상 상할 수 없었다. 버스도 잘 안다니고, 집 대신에 콘테이너에서 살아야 되니 너무 驚愕 스러웠다” 등의 흥미롭고 異色的인 반응들이 보였다. 특히 血緣·種族論理에 입각하는 蒙古 人들이 자본주의적 경제 優劣질서에 의한 중국 동포에 대한 輕蔑을 이해하지 못 하는 것은 주목할 만 한 것 같다. 간단한 결론을 내리자면, 전통 사회의 한국인과 아주 흡사한 연령·신분·혈통에 의한 서열을 위주로 하는 思考方式을 갖고 있고, 또는 한국사회 속에서 한국인과 동등한 신분으로 어울려 살기를 적극적으로 熱望하는 滯韓몽고인들은 서구인에 비해서도 한 국 사회에 성공적으로 적응할 수 있다. 다만, 현재로서 不法滯留者라는 불리한 신분 에 의한 不適當한 社會的待遇로 말미암아 이 適應過程에서 蹉跌이 빚어질 뿐이다. 만약 그들의 신분이 陽性化되어 합법적인 勞·使關係가 이루어졌다면, 한국인들과 많 은 공통점을 갖고 있는 그들은 模範的인 駐韓外國人이 될 수 있었음은 분명하다. 현 재와 같은 비극적인 不法滯留의 狀況에서는 각종의 宗敎·社會團體들은 가능한 한 몽고인들을 支援·配慮해 주면 이러한 恩惠들은 미래의 바람직한 韓·蒙관계 성립에 크 게 기여하리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