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정보
초록
영어
This thesis is studing the Pproblems of Takahachi Doloo(1878~1967)’s Depiction on a History of Korean Confucianism. As Takahachi Doloo succeeded to the learning of his family, he did research on the new sciences in University of Tokyo. After university, he was intended to realize Japan’s ideal of imperialism as translating Britain sociologist Meredith Townswind’s Asia and Europe into Japanese during acting by the editor in chief. In 1903, he came to Korea, and first make a Korean linguistics. After he moved a research project direction toward Korean thought. Such change of learning was that he aimed to control Korean society after grasping manners and customs of Korean and selecting Korean characteristic in the viewpoint of thought history. He did his best of using a frame of large view in the historic context on studying Confucianism which many scholars developped in Korea. After he, in particular, syudied New-Confucianism of Lee Hwang(李滉: 1501~1570) and Lee Yi(李珥: 1536~1584) of scholars in the Joseon Dynasty period, he divided into two classes with their viewpoint. It is just of Joolipa(主理派) and Joogipa(主氣派). He involved Joolipa and Joogipa of two classes with political party strife. As attaching them to Korean Confucianism, especially he emphatically denied thought, religion, and culture of Korea. This negative study was of the reason that his pursuit of knowledge was with Japanese imperialistic wants. Finally, this research paper is a lack of study to Takahachi Doloo. But this would benefit in reconsideration on his study inclination during the Japanese work in a sociologic aspect of knowledge.
한국어
이 글은 타카하시 토오루(高橋亨)의 조선유학사 서술의 문제점을 다룬 것이다. 타카하시 토오루는 일찍이 가학(家學)을 계승하면서 도쿄제국대학에서 신학문(新學問)을 탐구하였다. 졸업 후, 구주일보(九州日報) 주필로 활동하다가 인도 연구에 권위자 영국의 메러디스 타운스윈드(Meredith Townswind)의 아시아 그리고 유럽(Asia and Europe)을 번역하며 제국주주의 이상을 실현하려는 의도를 갖는다. 1903년 한국으로 건너와 먼저 조선 국어학을 탐구하고 연구의 방향을 조선사상으로 나아갔다. 이러한 학문적 전이는 조선인의 풍속습관을 파악하고 그 사상사적 관점에서 조선인의 민족적 특성을 간취하여 조선사회를 통제하기 위한 것이었다. 타카하시 토오루는 조선 유학을 사적(史的) 맥락에서 대관(大觀)의 형식을 이용하여 기술하는데 진력하였다. 그의 조선유학에 대한 대관적 연구는, 삼국시대와 고려 유학을 간명하게 기술하고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조선의 유학자 이언적(李彦迪)․이황(李滉)․기대승(奇大升)․이이(李珥)․성혼(成渾) 등을 리기이원론자(理氣二元論者)로 여기다가, 이황과 이이가 사단칠정론에 대한 논지 전개 용어를 가지고 단순히 ‘주리파(主理派)’와 ‘주기파(主氣派)’로 도식화하고, 조선의 유학은 사상적 특징이 없고 그저 주자학의 시험장이라고 여긴 것이다. 하지만 조선의 유학 즉 성리학은 우주론보다는 심성론을 치밀하게 논리적으로 분석하여 심화시켰다. 타카하시 토오루는 조선의 심화 전개된 성리학을 간과하고 그 ‘주리파’와 ‘주기파’ 용어를 가지고 당론으로까지 연결시켰다. 그 당론이란 남인(南人)은 이황의 학설을 존숭하고, 노론(老論)은 이이의 학설을 존숭한다는 것이다. 특히 그는 당론으로 연결시켜 조선의 사상과 종교, 그리고 문화를 강력히 부정하였다. 그 부정이란 변화발전이 없다는 사상의 고착성과 독창적 견해가 없다는 사상의 종속성을 부각시킨 것이다. 그는 이를 적극 이용하여 종국에 일본의 문화와 사상을 주입시키고자 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연구는 그가 추구한 지식이 식민제국 일본의 욕망과 그 궤를 함께 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본 논문은 타카하시 토오루의 조선유학사 연구경향에 대한 문제점을 다루었으나 부족한 점이 없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동안 그의 연구경향을 지식사회학적 측면에서 재검토하는 데 약간의 보탬은 있을 것이다.
목차
1. 머리말
2. 가학과 근대적 학문탐구 및 사관
3. 식민사관에 의한 조선학 탐구
4. 조선유학의 대관적 서술과 학파 구축
5. ‘주리파’․‘주기파’ 분류 서술의 한계
6. 맺는 말
참고문헌
Abstra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