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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놀이’의 기술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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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 Language-Games Are Described

신상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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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영어

Wittgenstein says that philosophy may in no way interfere with the actual use of language; it can in the end only describe it. For it cannot give it any foundation either. It leaves everything as it is.
The reason for this seems to show that philosophy is contaminated with a serious disease, which has come from 'essence' philosophy since Plato. It is therefore necessary that such a philosophy should have a therapy.
In this paper we try to show that a reasonable therapy may be given by Wittgenstein, in particular from a point of view with Philosophical Investigations. The process made in PI consists of two steps: rejecting 'Explanation' and accepting 'Description.'
Despite a well-known common sense in which philosophy is the attempt to make explanations, Wittgenstein claims that in philosophizing we should not explain something but describe it. For an explanation comes to an end somewhere. And it gives us foundations from which we tend to make things something different from what they really are. Thus we have to pay attention to 'Description.'
According to Wittgenstein, to say that we describe something is to say that we have to deal with it in a philosophical context, which is not the same thing as sciences do. Philosophical contexts turn our eyes to look and see what they are, rather than what they should be; that is, realizing words and sentences in their own circumstances, we have to understand them in our ordinary language-use.
In addition, errors and mistakes, which Augustine put forward in his explanation of languages, are discovered while we look for Wittgensteinean point of view on language-games. 'Description' we mean be in this paper may be summed up in a word: "Look and See" what is happening.

한국어

이 글은 비트겐슈타인이 ��Æ��Å철학적 탐구��Å��Æ에서 말하는 철학의 탐구 방법을 ‘말놀이’의 기술 방식을 통해 보여주려는 시도로 씌어진 것이다. 철학에서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한 낱말이 나르고 있는 짐, 즉 그 의미를 바로 전달하는지를 정확히 알아내는 것이다. 대부분의 철학적 진술은 그러나 그 나름의 표현방식에 의해 그 의미가 가리워지거나 주는가 하면, 늘어나거나 거짓꼴을 갖추기도 한다. 따라서 철학의 중요한 역할은 이것을 위한 치료적 기능을 담당하는 것이다. 철학의 치료적 기능을 통해 노리는 목적은 ‘매사를 그대로 두는 것’이다. 그러면 이런 목적을 어떻게 도달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비트겐슈타인의 답변을 본 논문은 <설명을 버리고 기술을 택하라>는 말로 제시한다.
비트겐슈타인에 따르면, 서양 철학의 핵심된 사조는 경험 이면에 있는 ‘본질’을 탐구하려는 시도에 있었고, 이 본질 탐구의 벽은 늘 언어 표현을 그 본질을 <지시하는 무엇>으로 여기게 했고, 이것을 이야기로 만들어내는 ‘설명’을 요구했다. 그런데 이런 방식의 설명은 중세 신학자이자 철학자인 아우구스티누스에게서 발견되는데, 이 설명은 몇 가지 형태가 있으며 그것들은 각각 결정적인 한계를 갖고 있다.
첫째, 직시적 설명은 매우 다양하게 해석되는 사물의 복합성 ― 의미 ― 을 단순화시킬 뿐만 아니라, 그것이 직시하지 못하는 단어가 있기도 하므로, 환원의 과정에 한계를 갖는다. 둘째, 언어적 설명은 사물을 가리키는데 쓰는 언어는 본질적으로 공통성을 갖는다는 믿음에서 비롯되는데, 이 믿음은 사태에 근거를 둔 것이 아니라 이 믿음을 근거로 사태를 파악하는 것이 사실이라는 데서 선결문제 오류를 범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언어와 대상 사이에 어떤 공통점이 존재한다는 믿음도 이 설명의 암묵적 토대인데, 이것 또한 언어내의 정의에 불과하다. 그런데 설명은 이해와 관련되어 있다. 지식을 발전, 증진시킨다고 해서 바른 설명이 아니라, 설명을 통해 의미의 이해가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한 의사소통이 이루어질 수 있으며, 기술을 통해 이것이 이루어진다는 것이 비트겐슈타인의 입장이다.
기술은 그러나 언어의 바깥에서 이루어지는 자연과학적 방법과는 동일하지 않다. 우선, 언어문제에 대한 철학적 맥락은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둔다’는 것이다. 이것은 어떤 새로운 언어의 토대, 예컨대 정의를 통한 사물의 설명 따위를지양하고, 각 단어의 고유한 용법을 존중하여 이해하는 것이다. 이것은 은연중 들어 올 질병적 정의를 용인한다는 말이 아니라, 그 개념의 실질적인 쓰임새가 여과없이 표현되는 그대로의 의미를 일상언어 사용자가 알도록 말한다는 뜻이다. 종교적 언술의 경우, 말의 직설적 대상을 통한 이해가 아니라, 사용되는 맥락에서 드러나는 고유한 의미를 일상적(보편적) 언어로 담아내는 노력이 필요하며, 이런 각도에서 모든 진술은 다 철학적 분석을 거칠 수 있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기술과 사실 사이에는 어떤 관계를 갖는지가 문제가 된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입장은 모든 문장은 기술이라는 생각에 기초해 있는데, 이를 비트겐슈타인은 비판했다. 각 문장이 단일한 용법을 가지는데 비해, 기술은 여러 용법을 가진다 기술로 기능하는 문장과 . 그렇지 못한 문장이 있고, 한 문장을 이해하는 것과 그것에 반응하는 것 사이를 왜곡시킨다. 마지막으로, 위장된 기술의 경우도 생각할 수 있다. 이런 경우 분석을 통해 보펀적인 무엇을 끄집어낼 수 있다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입장에 반대하면서, 비트겐슈타인은 의미와 이해란 정신상태나 문장을 말하고 듣는 부수 과정이라는 논지에 반기를 든다. 그가 주장하는 것은 문장을 통한 시원적 그림 추구와는 다른 차원의 시도, 즉 ‘보고 알아채기’ 인 것이다.

목차

요약문
 1. 철학적 기술의 범위
 2. 설명
  1) 직시적 설명 Ostensive Explanation
  2) 언어적 설명 Verbal Explanation
  3) 설명의 이해
 3. 기술의 방법
  1) 언어문제에 대한 철학적 맥락
  2) 기술과 사실
  3) 위장된 기술과 분석
 참고문헌
 Abstract

저자정보

  • 신상형 Shin, SangHyong. 안동대학교 동양철학과 교수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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