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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식론과 베르크손의 형이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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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éorie de la connaissance et Métaphysique bergsonienne

차건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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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영어

Cette thèe se propose de remettre en mouvement la pensé primitive du philosophe Bergson en montrant la difféence entre elle et le bergsonisme éabli.
Pour éiter la fausse interpréation de la philosophie bergsonienne, tout d'bord faut-il bien déerminer la primautéentre les concepts de duré et d'intuition. Un certain post-bergsonien Deleuze considèe le bergsonisme comme une philosophie qui part de la méhode d'intuition. Mais, en rélité chez Bergson la méhode et l'objet de connaissance ne sont point séarables. L'intuition de la duré n'est pas une sorte de méhode qui préèe son objet, mais l'expéience méaphysique dans laquelle la connaissance n'est
pas d'autre chose que la méaphysique.
Fonder sur l'expéience en philosophie, cela veut dire s'approcher de l'ordre du rél et du vivant. Et pour s'approcher du rél, c'est-àdire pour que la méaphysique soit possible, il n'est pas néessaire de se fournir d'abord de la méhode philosophique. La pensé concrèe en s'approchant de l'êre ne doit pas se retourner sans cesse vers soi-mêe, parce que son mouvement mêe est sa garantie. Mais la philosophie qui n'a aucun contact avec l'êre, grossit des théries de la connaissance. Chez Bergson, au fait, la méhode philosophique est immanente àla pensé du rél, c'est pourquoi la méhode est déàla méaphysique.
Philosopher consiste ainsi àse placer, dans l'objet mêe qui dure et change sans cesse, par un effort d'intuition. Mais, la pensé intuitive porte d'abord sur notre esprit qui est capable de tirer d'elle-mêe plus qu'elle ne contient, de s'enrichir du dedans, de se crér ou se recrér sans cesse, et qui n'est jamais faite mais toujours agissante. C'est ce monde de la duré intéieure et par conséuent de la crétion et de la libertéqui est l'objet propre de la philosophie.
Contre Deleuze qui voit en l'intuition bergsonienne la méhode platonicienne de division et aussi l'analyse transcendantale de Kant, notre thèe fait voire que l'intuition est la coïcidence, et que le connaîre peut êre le quasi-êre. Cette unitédu connaîre et de l'êre est celle de l'abolu dans lequel on se meut et vit. En somme, la connaissance intuitive qui est celle de l'imméiat ne fait qu'un avec le mouvement méaphysique de Bergson.

한국어

본 논문은 화석화, 정형화되어 그 운동성을 상실한 베르크손주의와 철학자 베르크손의 사유가 갖는 원초적 생동감 사이의 차이를 부각시켜서, 그를 지금 여기에 되살아 움직이게 하려는 시도이다.
베르크손 철학의 중심개념인 ‘지속’과 ‘직관’ 중에 어느 것이 우위를 차지하느냐에 따라 그의 철학에 대한 이해가 달라진다. 소위 ‘후기베르크손주의자’에 속하는 들뢰즈는 ‘베르크손주의’를 ‘방법으로서의 직관’에 의거하는 철학으로 간주하였지만, 베르크손에게 있어서 인식방법과 인식대상은 결코 분리되지 않는다. 그의 ‘지속의 직관’은 인식대상에 선행하는 일종의 인식방법이 아니라, 존재와 인식이 만나는 ― 인식이 형이상학이 되는 상황으로서 이른바 ‘형이상학적 경험’이다.
철학이 경험에 근거한다는 것은 실제적이며 살아있는 것이 갖는 복잡다단함의 질서에 근접함을 뜻한다. 이와 같이 실재에 도달함, 다시 말해 형이상학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철학적 방법이라는 도구가 먼저 구비되어야 할 필요는 없다. 존재 자체에 근접하려는 구체적 사유는 전진하는 그 운동이 스스로의 보증이 되기 때문에 대상과의 사이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없지만, 존재와의 접점이 전혀 없는 철학은 인식론으로 비대해질 수밖에 없다. 요컨대 베르크손에 있어서 철학적 방법은 실재에 대한 사유에 내재적이므로, 방법 자체가 이미 형이상학이다.
베르크손 철학에서 ‘직관’은 ‘정확성’을 기하려는 노력을 통해 체계적 단일성이 아닌 실재의 단일성, 다시 말해 ‘실제적 지속’의 단일성에 도달한다. 결국 철학함이란 ‘직관의 노력’에 의해서 끊임없이 변화 하는 대상 안에 자리잡는 것이며 실재를 그 본질인 운동성 안에서 파악함을 의미한다. 이 때 ‘직관’은 우선 내적 영역을 대상으로 삼는다. 스스로를 창조하고 끊임없이 재창조할 수 있는 내부적 정신세계야 말로 ‘직관적 사유’가 목표로 삼는 ‘실제적 지속’의 세계이며 베르크손이 창조와 자유의 세계라고 규정하는 철학의 고유영역이다.
끝으로 ‘직관’을 플라톤적인 ‘나눔의 방법’ 으로 보고 칸트의 ‘초월적 분석’과도 연결시키는 들뢰즈의 입장에 대해서 본 논문은 직관이 ‘일치’이며 ‘합일’임을, ‘인식’은 ‘거의 존재’일 수 있음을 보인다. 인식과 존재가 분화되기 이전의 ‘단일성’이란 바로 우리가 그 안에서 움직이며 살아가는 ‘절대’의 단일성이며, 이와 같은 절대적 현전이 바로 최초 직관의 순간에 해당한다. 결국 ‘직관적 인식’은 ‘직접적인 것’에 대한 인식이며, 그로부터 출발하여 끊임없이 회귀하는 운동이 바로 베르크손의 형이상학이다.

목차

요약문
 I. 베르크손주의
 II. 베르크손의 ‘인식론’
 III. ‘형이상학적 경험’의 방법
 IV. 직관 개념과 지속의 직관
 V. 직관적 인식과 형이상학
 참고문헌
 Resume

저자정보

  • 차건희 Tcha, Gun-Hi. 서울시립대학교 철학과 교수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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