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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하 최문식의 사회운동과 기독교사회주의

원문정보

The Social Movement of Choi Mun Sik and Christian Socialism under Japanese Empire

김권정

숭실사학회 숭실사학 제26집 2011.06 pp.145-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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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영어

The Social Movement of Choi Mun Sik and Christian Socialism under Japanese Empire Kim, Kwon Jung Choi Mun Sik is not much of a stranger to the historians of Korean modern and contemporary history. He is known as Radical Christian who developed social movement in the dimension of Christian Socialism under Japanese Empire. Above all, he is evaluated as one of the persons among leaders of 'People's Struggle in October' which broke out in Daegu in 1946 right after the Liberation. However, until recently his practical ideology did not attract any particular attention. Choi Mun Sik realized socioeconomic inconsistency since his days in Daegu Gyeseong School. He began to search for social orientation and ideology which would settle this. He read various books related to social ideas and refined and deepened his critical ideas. After he graduated from Gyeseong School, he entered the Soongsil College in Pyeongyang. At that time he accommodated up to ideological parts together with critical ideas of Christian Socialism. He was largely influenced by Cho Man Sik who had been leading national movement in Pyeongyang. He who participated in the gathering of mainly students of the Soongsil College established Christian Socialism ideologically. In the latter 1920’s in the Korean Christianity community, social interest and participation sense were heightened. Christian young men including Choi Mun Sik established 「Christian Rural Research Association」 for propelling some more systematic rural movement. The purpose of this organization was ultimately construction of Holly village. Choi Mun Sik exercised excellent organizational power and played a great role in organizing the association. He once suffered ordeal due to ‘Daegu Labor Association Incident’. He participated in social movement for more intensifying the ideology of Christian Socialism and concrete realization of it. Through this he developed practice movement which was to realize the mind of Jesus in Socialism manner. Soon Choi Mun Sik established the theory of ‘Kingdom of God’ which was the theological foundation of Christian Socialism and at the same time was ultimate purpose. It became the ideological background for participation in and activity of ‘People’s Struggle in October’ in Daegu after the Liberation.

한국어

일제하 최문식의 사회운동과 기독교사회주의 김 권 정 최문식은 한국근현대사의 역사가들에게 그렇게 낯선 인물이 아니다. 그는 일제하 기독교사회주의 차원에서 사회운동을 전개한 진보적 기독교인으로 알려져 있다. 무엇보다 그는 해방직후 1946년 대구에서 일어났던 ‘10월 인민항쟁’의 주도자 가운데 한사람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최근까지도 그의 실천적 사상에 대해서는 별반 주목을 받지 못하였다. 최문식은 대구 계성학교 시절부터 사회경제적 모순을 인식하였다. 그는 이것을 해결할 사회적 방향 및 사상을 모색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다양한 사회사상과 관련된 서적들을 읽고 자신의 문제의식을 다듬고 심화시켜 나갔다. 계성학교를 졸업하고 그는 평양 숭실전문학교에 입학하였다. 이 무렵 그는 기독교사회주의의 문제의식과 함께 이념적 부분까지도 수용하였다. 그는 평양 민족운동을 이끌던 조만식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숭실전문학교 학생들 중심의 모임에 참여한 그는 기독교사회주의를 사상적으로 확립하게 되었다. 1920년대 후반 한국기독교계에는 사회적 관심과 참여의식이 고조되었다. 최문식을 비롯한 기독청년들은 좀 더 체계적인 농촌운동의 추진을 위해 「기독교농촌연구회」를 결성하였다. 이 단체의 목표에는 궁극적으로는 예수촌의 건설에 두었다. 최문식은 탁월한 조직력을 발휘하여 단체를 조직하는데 큰 역할을 담당하였다. 그는 ‘대구노동자협의회사건’으로 시련을 겪기도 하였다. 그는 기독교사회주의 사상을 더욱 심화시키고 구체적으로 실천하기 위한 사회운동에 참여하였다. 이를 통해 그는 예수의 정신을 ‘사회주의적 방법’으로 구현하려고 하는 실천운동을 펼쳐나갔다. 이어 최문식은 기독교사회주의의 신학적 기반인 동시에 궁극적 목표로 ‘하나님나라론’을 확립하였다. 이것은 해방 후 대구 10월 인민항쟁의 참여와 활동에 그 사상 배경이 되었다.

목차

I. 머리말
 II. 기독교사회주의사상의 형성
  1. 대구 계성학교 수학과 사회사상 모색
  2. 평양 숭실전문학교 진학과 기독교사회주의 수용
 III. 기독교사회운동의 참여와 활동
  1. 기독교농촌운동 전개와 예수촌건설론
  2. 대구기독교청년회, 일본유학, 그리고 노동자협의회 사건
  3. 평양 장로회 신학교 시절과 하니님나라론
 IV.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저자정보

  • 김권정 Kim, Kwon Jung. 경희대 호마니타스칼리지 객원교수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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