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rticle

논문검색

연구논문

鄕通事 河世國과 조선의 선택 -16~17세기 한 女眞語 통역관의 삶과 죽음-

원문정보

Jurchen Interpreter Ha Seguk:His Life and Death in Northeast Asia around the Turn of the 1600s

향통사 하세국과 조선의 선택 -16~17세기 한 여진어 통역관의 삶과 죽음-

계승범

피인용수 : 0(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초록

한국어

임진전쟁(왜란)이 발발하기 전에 이미 建州女眞을 통합하여 만주 일대에 서 독자적 세력을 굳힌 누르하치는 전쟁이 끝나자 본격적인 정복사업을 전 개하여 만주 전역을 평정하고,1616년 정초에 마침내 후금을 건국함으로써 소위 ‘명질서’에서 완전히 이탈했다.뿐만 아니라,1618년의 요동 침공을 시 작으로 중원 정복의 첫걸음을 디뎠다.이에,조선의 코앞에서 벌어진 명과 후금의 무력 충돌은 4반세기 넘게 지속되었고,지정학적으로 명과 후금 사 이에 놓인 조선은 외교 문제로 고심하였다.그런데 이렇게 중차대한 시점에 서 조선의 대후금 외교를 사실상 전담한 핵심 인물은 조정의 고위 관리가아 니라 灣浦출신의 하층민으로 鄕通事란 직책을 맡고 있던 河世國(1575 ~1622)이라는 자였다.그는 거의 25년 동안 만포에서 이루어진 거의 모든 교섭의 한복판에 있었으며,특별한 외교 임무를 띠고 누루하치를 여러 차례 직접 방문하기도 했다.이렇듯 조선을 대표해 누르하치와의 외교 실무를 전담하다시피 한 하세국 은 1622년에 후금에 머물던 중 후금 지도부에 의해 그만 처형됨으로써,이국에서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다.이 논문에서는 향통 사 하세국을 중심인물로 삼아 미시사的접근을 시도하되,그를 통해 17세기 전반 동아시아 질서의 격변 과정에서 조선이 처해 있던 위상과 조선의 선택 이 갖는 ‘東亞史’的의미를 거시적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임진전쟁(왜란)중 河世國의 활동
 3. 深河 패전(1619.3) 이후 河世國의 활동
 4. 후금의 요동 장악(1821.3)이후의 정세와 하세국의 죽음
 5. 맺음말:조선의 선택
 참고문헌
 Abstract

저자정보

  • 계승범 Kye, Seung-Bum. 서강대 사학과 대우교수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함께 이용한 논문

      ※ 원문제공기관과의 협약기간이 종료되어 열람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0개의 논문이 장바구니에 담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