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정보
초록
영어
Animations, with the plentiful images in its simpleness, deliver unique sensations that are different from movies.
한국어
애니메이션은 단순함 속에서도 풍부한 이미지와 상상력으로 영화와는 다른 감동 을 전달한다. 소박하고 단순한 흑백 이미지만으로도 이란을 바라보는 서방의 낯선 시선을 자연스럽게 그려낸 <페르세폴리스>, 미셀 오슬로의 <아주르와 아스마르>, <프린스 앤 프린세스> 그리고 <별별 이야기1, 2>와 같은 작품들은 지구 곳곳에서 벌어지는 일상들을 외면하지 않고, 애니메이션만이 가진 차별화된 표현방식으로 관객에게 효과적인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들 작품은 다소의 차이가 있지만, 현실에 구체적으로 존재하는 ‘타자’, 그 중에서도 낯선 자로 살아가는 이주민 혹은 이민자 들을 소재로 동서양 문화의 소통, 차이와 다름에 대한 성찰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 에 본고에서는 그동안 인간을 전체의 한 부분으로 보는 철학에 대하여 인간의 존 엄성과 책임의 이름으로 ‘타자’의 위상을 새롭게 정립한 레비나스의 철학의 중심으 로 살펴보았다. <별별 이야기>에서는 타자와의 문제가 언어, 문화, 민족성의 차이나 이질감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타자를 내 안으로 끌고 들어와 그 ‘타자성’을 제거하고 자신과 동일화하려는 욕망에서 기인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또한 정치적 이데올로기 로 인해 인권이 유리되고, 무고한 사람을 죽이는 전쟁의 원인은 무엇이고, 그 책임 은 누구에게 있느냐를 질문하는 <페르세폴리스>는 그 책임이 현실을 살아가는 구 체적인 존재, ‘나’와 ‘너’에게 있음을 단호하게 말하고 있다. 그리고 미셀 오슬로의 <프린스 앤 프린세스>와 <아주르와 아스마르>에서는 그동안 타자의 자리를 배제 시킨 ‘주체’에 대한 사유를 비판하고, 사랑의 의미를 타자성 그 자체로 받아들이는 신비의 관계로 승화시키고 있다.
목차
2. 주체가 파악할 수 없는 존재
3. 부끄러움과 분노 그리고 기억하기
4. 신비의 관계로서의 타자
5.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요약
Abstra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