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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의 불교 수용에 관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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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Study on King Sejong's Acceptance of Buddhism

조남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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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영어

This thesis was written for the purpose of grasp the Buddhistic mind point of King Sejong(世宗)-YiDao(李祹, 1397∼1450)who was the fourth king of the Joseon Dynasty. In the early years of the Joseon dynasty, the government maintained the policy of pro-Confucianism and anti-Buddhism. But King Sejong and Confucian government officials had different point of view on the traditional Buddhist culture. Therefore They argued heatedly every time of planning of Buddhistic ceremony at Court. Sejong's thought system kept an open mind with composure. Then he planned to bring reconciliation between Confucianism and Buddhism. In the side of establishing moral society he accented on the theory of Confucianism, and In the side of relief awareness he accented on the Buddhistic ceremony. Especially on the filial piety he always performed the two religious style. And for a prayer for one's restoration he maintained the ceremony of Buddhistic temple in his soul of souls. In the Sejong's life, many separations by death made him more believing in Buddhism with age as well. At last he rebuilded a Buddhist temple at Court, and he summoned a Buddhist monk-SinMi(信眉) to his sleeping room for a Buddhist service. Sejong's Acceptance of Buddhism was a hard nut to crack. But his mind was a abundance of moral culture in Joseon Dynasty. I think that King Sejong's religious amicable consciousness could make a contribution to overcome religious conflicts in our modern society.

한국어

조선왕조실록에 전하는 세종의 ‘薨記’에는 ‘말년에 그를 불교로 말하는 이가 있으나 해동의 요순으로 칭송될 만큼 오직 바른 모습만 보였다’고 평가하였다. 그러나 실록에 나타난 그의 모습을 살펴보면, 어릴 때부터 불교의식에 참여하였고 임금이 되어서는 각종 救病祈禱 의식을 설행하며 왕자들의 寫經事業을 비호하였을 뿐만 아니라 말년에는 내불당을 건립하고 승려를 침실에까지 초치하여 특별히 예대하는 모습까지 보였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세종 훙기에서의 평가는 사실과 일치하는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그러면 그에게서 불교는 어떻게 수용되는 것이었으며 그 정신적 기반은 무엇이었을까? 이점이 이 글에서 살피려는 핵심 내용이다. 숭유억불의 정치 노선은 태종 때에 강화되었지만 세종에 이르러서는 다소 완화되는 모습을 띤다. 왜냐하면 선왕들도 불교의식을 존숭하던 실제적 상황과 불교를 높이는 명나라와의 국제적 분위기 및 연비의식과 같은 자신의 종교체험이 계속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상황은 세종 자신에 있어서 불교의 因果應報說과 함께 信心을 더하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세종이 불교를 수용하는 구체적인 사실은 왕실에서의 구병기도 행사와 혼령 위안의 추모행사 등으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그와 같은 불교의식을 수용하는 경우에는 언제나 儒臣의 비판론이 나타났지만 세종은 넓은 지식과 군주의 권위로 의연히 대응하면서 信佛의 태도를 견지해 갔다. 세종의 불교 수용에는 특유의 정신적 기반이 깔려있었으니, 그것은 유교와 불교는 대립관계가 아닌 공존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고 보는 사고체계이다. 그리하여 그는 구병의 기도를 올릴 때는 종묘·사직이나 불당을 구별하지 않았고, 조상의 혼령을 위안할 때는 사당이나 불당이 함께 있어 좋다는 판단을 낳게 하였다. 이 후자로 말미암아 수개월간의 거국적 반대론에 맞서서 세종은 문소전에 불당을 재건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와 같은 유불공존의 사고방식은 숭조의식과 효성의식, 그리고 가족애와 애민정신에 상합하여 생활문화를 발전시키는 동인으로 확인되었다. 즉 불교에 대한 세종의 긍정과 수용적 태도는, 다양한 측면에서 소통과 공존 및 화해의 의미를 낳고 있었다.

목차

국문초록
 Ⅰ. 서론
 Ⅱ. 세종의 억불정책 완화 배경
 Ⅲ. 세종 불교 수용의 실제
  1. 구병·구명의 기도 행사
  2. 혼령 위안의 추모 방식
 Ⅳ. 불교 수용의 정신적 기반
 Ⅴ. 결론
 참고문헌
 Abstract

저자정보

  • 조남욱 Cho, Nam-Uk. 부산대학교 윤리교육과 교수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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