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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우전신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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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우전신도비는 완주군 고산면 소농리 소농마을 입구 좌측 산자락에 있다. 방형대석에 비신이 정사각형이라서 개석도 사각의 옥개형으로 조각되어 좀처럼 보기 드문 형태이다. 비신의 한 면이 높이가 2m에 이르고 폭이 70cm의 크기인데 4면이 같은 크기로 되어 있어 그 규모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비문은 당대의 학자이며 의정부 우참찬인 김간이 짓고 글씨는 홍우전의 아들 홍계희가 썼으며 홍찬해의 두전으로 1766년에 건립했다. 비문은 무려 3700자에 이르는 장문이며 글씨는 당나라 후기 서예가인 안진경의 다보탑비 서체로, 안심사 사적비와 함께 홍계희의 역작으로 손꼽힌다.
홍우전은 고려 태사 은열(殷悅)을 시조로 하고 대대로 벼슬길에 올랐던 가문에서 태어나 40세에 진사에 올라 경기전 참봉을 시작으로 공조정랑, 진안현감, 한성부판관, 함양군수 등을 역임하고 경종12년 (1719) 별시(別試)에 차석으로 뽑혔다. 이어 장례원 판결사,병조참의를 거쳐 충청감사에 임명되었으나 부모의 연로함을 들어 사직하였다가 다시 대사간 경상감사 등을 역임하였다. 그러나 박필몽 등 반대당의 주장으로 관직을 삭탈당하여 전주 구미리에 내려와 우거하다 태인으로 옮겨 살았다. 영조 원년(1725)이 되자 사면되어 공조,예조침의에 임명되었으나 부임하기 전 대사간이 되었다. 이어 공조참판이 되었고 경조실록을 편찬하기도 하였다. 홍우전은 성품이 극단적인 흑백론자로 정적이 많아 비문에 나타나듯이 등재된 인물이 43인,그 중 역신이 8인,관직명도 61종에 이른다
홍계희는 아들01 4명 있었는데 2명이 문과에 급제 하였으나 정조가 즉위하자 모조리 역적으로 몰려 죽음을 당하고 그 자신도 무덤 속에서 관직을 삭탈당하는 수모를 당해야 했다.

저자정보

  • 전라금석문연구회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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