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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거중신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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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황거중신도비는 완주군 비봉면 내월리 원내월 제각 옆에 세워져있고 그의 묘는 마을 뒷산에 있다. 방형대석에 옥개형 개석을 갖추고 있으며 1855년에 세웠다. 비문은 기우만이 짓고 김문제가 해서로 썼으며 두전도 함께 썼다.
황거중의 관항은 우주이며 자는 경덕이다. 고려 중윤 민보는 9세조이고, 문하평리 운용의 아들로 생몰연대는 기록에 없다. 다만 고려조에 관직에 있으면서 경학을 통해 도를 이루는 데 힘썼다. 조선왕조 창업에 동짙「하여 태조가 왕위에 오르자 개국공신으로 정당문학(政堂文學)이 되어 제일 먼저 향학을 베풀고자 조정에 건의하여 풍속을 바꾸려면 향리에서부터 비롯되니 경서에도 밝고 행실도 단정한 인재를 가려 고을에 강사로 모시기를 권하였다 즉시 주, 군(州, 郡)에 시행하라는 윤허가 내려서 유학교도나 휴학훈도란
직명이 이 때부터 비롯된 이름이라 한다.
구 족보의 기록에 갑술년(1394) 원로잔치에 성조께서 친히 동첨하고 취하여 일어나 춤을 추면서 황거중에게 마주 일어나 춤을 추자고 하시자 사양할 수 없어 같이 춤을 추었는데 화공에게 영하여 그림을 그리라 하고 드디어 어포(御袍), 어대(御帶), 은병, 옥술잔 대무도(對舞圖)를 상으로 내리고 곧 공조전서를 삼고 다시 호조판서를 내렸다고 하였다.
또한 신도비명에는 성조께서 황산의 일에 공을 총사로 삼아 많은 계획을 세우도록 하였는데 이기고 돌아와 완산에 머물러 말씀하시기를“나와 그대는 다 이 고장 사람이라 그러니 더불어 올라와 즐기자” 하셨다.

저자정보

  • 전라금석문연구회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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