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정보
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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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비는 완주군 소앙먼 죽절리 분토동에 있는 전주최씨 제각인 주덕재 좌측 능선 위에 있다.
연촌공 최덕지의 묘소 앞에 있는 이 신도비는 거북의 앞모습만 겨우 나타날 정도의 소박한 거북좌대에 오석의 비신과 날렵한 조각의 옥개형 개석을 갖추었다.1919년에 건립했으며 비문은 간재 전우가 짓고 글씨는 15세손 최원홍이 썼으며 두전은 김학수가 썼다. 언촌공 덕지는 세종조의 인물로 자는 우수 호는 언촌으로 직제학 최담의 넷째아들이다. 1405년(태종5) 문과에 급제하여 옥당대각을 거쳐 일찍 남원부사로 있다가 물러나 영암의 영보촌에 정자를 짓고 존양(存養)이라 이름하였다.
그 후 문종이 즉위하면서 불러 예문관 직제학에 복직하였으나 이듬해 나이가 많음을 이유로 물러났다 그 때에 박팽년이 이르기를 ‘선생이 조정에 있어 그 명성과 작위가 이에 그치지 않거늘 이제 전리(田里)에 물러나 이미 세상으로 더불어 상관치 아니한지라 만인의 감탄과 칭송이 많으니 그 사람의 신음에 느끼고 물망을 지는 바에 있지 않고 이에 있도다.’ 라고 하였다.
또 이문질이 말하기를 ‘부귀영화에 다 족히 동심치 않았으며 고풍여운은 족히 써 탐부로 정렴하고 유약한 자로서 서게 한다 하였으며, 세상에 구함이 없고 천명을 즐기며 한 집안에 천고성현을 벗한다.’ 하였다.
그 때 동료 선비들은 새詩)를 지어주고 노자를 마련하여 그의 뜻을 높이었다. 72세에 죽으니 영암 사람들이 사당을 세워 존양사(存養祠)라 하고 제사를 지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