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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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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심사 사적비는 완주군 운주면 완창리 안심사 입구에서 좌측으로 보이는 밭 가운데 있다. 거대한 자연석 암반을 다듬어 좌대로 삼고, 흰 대리석으로 비신을 세운 뒤 옥개형 개석을 올렸다. 비신의 높이가 2.2m에 폭이 1m가 넘는 웅장한 이 비는 1795년에 건립되었다. 안심사 사적비문은 당시 안심사 주지 처능(處能)의 부탁을 받아 우의정 김석주가 짓고, 글씨는 이조판서를 지낸 홍계희가 썼으며, 두전은 영의정을 지낸 유척기가 썼고, 도총부 도총관 유최기가 후반부에 記文을 추가했다. 이러한 당대 최고의 문장가와 서예가가 합작한 이 비는 금석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자료로 인정되어 전라북도유형문화재 제109호로 지정되어 보호하고 있다. 특히 홍계희의 해서글씨는 당나라 후기 서예가인 안진경이 44세에 썼다는 다보불탑감응비문의 서체를 완벽하게 재현한 느낌이 들 정도로 철저한 안법의 필의를 고수하여 쓴 글씨다. 두전의 소전(小篆)글씨도 서자의 명성에 걸맞게 중국의 이양빙 전서를 보는 듯 가늘면서도 강골한 필획으로 여유 있는 자형포치가 대가다운 기품이 묻어나는 글씨다.
이 안심사는 신라 선덕여왕 7년(638) 자장율사가 창건하였다 하며 그 뒤 875년에 도선국사에 의해 중장되었다. 신라말기 조구화상에 의해 재중창되었고 고려를 거쳐 조선 선조 34년(1601)에 수천화상에 의해 4중창 되었으며 숙종39년 (1710)에 5중창되었다고 한다. 안심사는 6ㆍ25전란으로 당시 경내에 30여 채의 건물과 주변에 13개의 암자가 있었으나 전소되었다. 현재 사지 내에는 불에 타지 않은 석재나 주춧돌들이 남아있어 당시 번창했던 사찰의 원형을 상상해 볼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