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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담유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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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당 최담 선생 유허비는 한벽당 옆 산기슭 옥류동 비각 안에 세워져 있다. 주변에는 창암 이삼만의 유적인 백화담(百華澤) 등 암각서가 있고 도로변에는 최근에 세운 월당 선생 찬시비가 있다.
월당 선생유허비는 성균제주 송치규가 짓고 전면을 썼으며 16세손 최설이 후면을 썼다. 비의 재질이 비교적 약하나 비각이 있어 보존 상태가 양호하며 글씨는 동국진체의 전형적인 해서에 강약과 응축이 조화된 뛰어난 필치이다.
월당 최담 선생은 고려말에 중랑장 최용봉의 장남으로 태어나 조선조에 집현전 직제학을 지내다가 벼슬을 버리고 이곳 옥류동으로 낙향하여 한벽당(寒碧堂)을 짓고 제자들을 가르쳤다. 과거 옥류동과 한벽당 일대는 누대에 걸쳐 월당의 후손들이 자리잡고 세거하였었다. 그러나 조선말 전라도 지역의 대학자요 항일투사로 존경을 받았던 금재 최병심이 종대를 지키고 있던 시기에 한일 합방이 되고 이곳에 전라선 철도가 개설되게 되었다. 금재는 여러 방면으로 노력하며 저항하였으나 결국 500여 년 전통을 지켜온 최씨종대 터에 철도가 놓여지게 되었고 명문가의 흔적은 사라지고 말았다. 현재 전주 교동에는 ‘은행나무집’ 이란 최씨종대(崔氏宗垈)가 남아있어 전주최씨들의 역사를 대변해주고 있으며 월당의 아들 광지(匡之) 직지(直之) 득지(得之) 덕지(德之) 등 4형제는 학문으로 명성을 떨친 인물들이다. 그의 후손 중에는 서산대사로 잘 알려진 휴정도 있다.

저자정보

  • 전라금석문연구회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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