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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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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비는 전주시 완산구 중화산동 신흥학교 교정에 있다. 비의 형태는 방형대석의 좌대에 월석으로 되어 있으며 1707년에 건립되었다. 희현당 사적비와 중수비는 땅 속에 묻혀있던 것을 발굴하여 세운 것으로 희현당을 창설한 관찰사 김시걸과 이를 중수한 이주진의 공적을 기록한 것이다.
이 고장 교육기관의 하나였던 희현당은 설립 당시 서원의 형식을 띤 것으로 제도와 규모가 잘 갖춰진 학당이라고 볼 수 있다. 1700년(숙종26)에 당시 관찰사로 재임한 김시걸이 지방유지인 진사 오명기와 더불어 황학대 기슭의 옛 사마제터에 학당을 설치하였다. 사마제란 생원과 진사가 모이는 곳으로 현재의 신흥고등학교 자리이다. 김시걸은 희현당을 지어놓고 이듬해 대사간으로 임명되었으나 부임 전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희현당은 봄·가을로 나누어 전주에서 10명 그 외 도내지역에서 20명 등, 30명의 학생을 뽑아 수강케 하였으며, 소유하고 있는 전답의 농사수입으로 책을 비치하고 학업을 돕는 경비로 충당하였다 또 임원을 두어 사무를 처리하고 식모를 채용하여 숙식을 보살피는 등 오늘날 학교제도와 다름없게 운영하였다. 이후 관찰사로 부임한 이집과 그 아들 이주진에 의해 학당이 크게 확장 중수되었다 한때 구내에 김시걸과 이주진을 배항하는 祠를 세우려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 후 경영이 충실치 못하여 퇴락만 거듭하고 있다가 1907년 신흥학교가 세워져 일부 교실로 사용되기도 하였으나 곧 철폐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