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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국의 선전전과 라디오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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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paganda Warfare and Radio Boadcasting in Manchukuo

강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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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영어

This study is an attempt to analyze development and meaning of radio broadcasting in terms of Manchukuo‘s formation of nation-state and enforcement of imperial regime. In 20th century, radio has contributed in creating nationhood under state's control. Radio was popular also in Manchukuo as a way to create 'Manchurian' who had contradictory identities as a submember of Japan empire and citizen of independent country. Therefore, radio industry in Manchukuo is an important example of state and empire's logic penetrating into people's daily lives and artificially constructing national identity.
History of propaganda in Manchukuo starts with information gathering and publicizing with the purpose of stabilizing domination over railway and surrounding areas in times of South Manchuria Railway Corporation. Manchukuo, an independent state established in 1932, focused on international and domestic propaganda activities in order to eliminate impression of puppet state and to reconfirm legitimacy as authentic nation-state. Especially in the Sino-Japanese War
period, producing nationhood to support total war became urgent. Manchukuo then took notice of radio in terms of its signal's synchronicity and crossability of border which overcomes regional and class boundaries.
Radio broadcasting in Manchuria began in the Kwantung Leased Territory(關東州), and after Manchukuo was established, the system moved to the capital Xinjing(新京). In 1933, the state-run company, Manchuria Telegram and Telephone Corporation, or MTT, was established and broadcasting industry got into its stride. 100kW output broadcasting station was constructed in Xinjing that could link whole Manchukuo and Kwantung Leased Territory which enabled dual language broadcasting in Chinese, etc. and Japanese. Based on these technological developments and Manchukuo government's guidance, MTT began creating and transmitting programs while supplying receivers.
Receivers should be provided in order for the radios to operate as instrument of propaganda. MTT enthusiastically supplied receivers, developing MTT-Type Receiver and selling it by themselves at a reasonable price, hoping to increase listening population. MTT's radio supplying project was a kind of 'nation-building‘ project that indicated state's boundary and enhanced unity among state members.
The main target of radio supplying project was Chinese citizens which made up most of the population. The broadcasters showed deep interest in Chinese citizens because they had the most (potential) listeners and were supposed to be the leading force of 'Manchurian Culture'. 'Manchurian Culture' was an unique mass culture that Manchukuo needed for its identity as an independent state. It should straddle various races that make up Manchukuo but should also be different from Japanese or Chinese culture. MTT focused on producing Chinese programs and devised a multi-lingual broadcasting policy to use Russian, Korean etc. in each region in order to realize 'Manchurian Culture' through radio wave. MTT also tried to eek 'something Manchurian' that constitute 'Manchurian Culture' through traditional music recording project. However it was difficult to create independent culture without threatening Japanese culture, the culture of leading group, in Manchukuo which is the multi-racial country. Rather, seeking 'Manchurian Culture' became a good example of independent country
Manchukuo's dilemma that exists within imperial regime.
While radio supplying project was inwardly a 'nation-building' project, bilateral project between colonies such as Korea, Taiwan, and puppet governments in North China was outwardly a 'empire-building' project since it tries to express dynamics of the imperialism through hearing. MTTs broadcasting exchange industry had two issues; to sensually make listeners aware of empire Japan's territory, and to reconfirm Japan(ese) as leading race of Imperial Japan. Before 1941, there were active exchange of broadcast among Japan, North China and Korea. The regular exchanged-programs were mostly lecture programs but temporary exchanged-programs often consist of entertainment programs. Also, while radio supplying project was emphasized in terms of 'seeking of Manchurian Culture', broadcasting exchange industry emphasized interaction with governments in North China.
After 1941 when Aisa-Pacific War was intensified, 'Greater East Asian Broadcasting Sphere(大東亞放送圈)', the network which connects all parts of Imperial Japan, was designed. It includes colonies and South Pacific Mandate based on linkage among Japan-Manchuria-North China, focusing on exchanging programs as well as technological cooperation under control of Mainland Japan.
MTT participated in East Asian Electric Communication Cousil(東亞電氣通信協議會) and East Asian Broadcating Exchanges(東亞交換放送) led by NHK(日本放送協會) as a member of 'Greater East Asian Broadcasting Sphere'. East Asian Broadcating Exchanges, which actively took place after the attack of Pearl Harbor, propagandizes each regions linkage and cooperation while confirming Japan's existence at the top of the network. Though its purpose wasn't realized
due to timeand technological limits, 'Greater East Asian Broadcasting Sphere' is an fulfilled image of 'East Asian New Order(東亞新秩序)' in terms of radio wave. In view of the results, radio broadcasting in Manchukuo was not fully productive in both inward supplying project and outward exchange project till the defeat of Asia Pacific War. However, if we consider potential of radio broadcasting in Manchukuo, which is multi-racial state as well as the microcosm of
Imperial Japan, we could get a sense of contradiction of nation-state and empire in the first half of 20th Century, through interaction among the sender(MTT), audience and the state in radio broadcasting in Manchukuo.

한국어

본 논문은 만주국의 국민국가 형성과 제국 질서의 강화라는 측면에서 만주국 라디오 방송의 전개 과정과 의미를 고찰하고자 한 시도이다. 20세기전반은 국가의 통제 아래 라디오가 국민의 창출에 적극적으로 이바지했던 시기였다. 만주국에서도 제국 일본의 하위 구성원이자 독립적인 국민국가라는 상반된 정체성을 동시에 가진 ‘만주국 국민’을 만들어내기 위한 도구로 라디오가 크게 주목을 받았다. 따라서 만주국의 라디오 산업은 국가와 제국의 논리가 일상에 침투하여 국민 정체성을 인위적으로 형성하는 과정
을 명료하게 드러내는 사례가 될 것이다.
만주국 선전 ․ 선무의 역사는 남만주철도공사 시기 철도 및 부속 지역의 안정적인 지배를 위한 정보수집 및 선전 활동에서 시작되었다. 1932년 독립국가로 건립된 만주국은 괴뢰국의 이미지를 불식하고 국민국가로서의 정당성을 재확인하기 위해 대내외적으로 선전활동에 주력하였다. 특히 중일전쟁이 본격화되면서, 총력전 체제를 뒷받침할 국민의 창출이 더욱 시급해졌다. 여기서 만주국은 지리적 ․ 계층적 경계를 뛰어넘는 월경성과 전파의 동시성이라는 라디오의 특징에 주목하였다. 만주의 라디오 방송은 관동주에서 시작되어, 만주국이 건립된 이후에는 수도 신징으로 방송의 중심이 옮겨 갔다. 1933년 국책회사인 만주전신전화주식회사가 설립되자 본격적인 방송사업이 전개되었다. 1934년에는 만주국과 관동주 전체를 하나의 방송권으로 묶을 수 있는 100kW 대출력 방송국이 신징에 건설되어, 중국어를 비롯한 기타 언어와 일본어의 이중방송이 가능해졌다. 이와 같은 기술적 토대와 만주국 정부의 지도 아래 만주전은 프로그램의 제작 및 송신과 수신기 보급 사업을 전개하였다. 선전도구로서 라디오가 제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달성되어야 할 조건은 수신기의 보급이었다. 만주전전은 염가의 전전형(電電型) 수신기를 개발하고 이를 직접 판매하는 사업까지 담당하여 적극적으로 수신기 보급 활동을 벌였으며, 청취 계약의 증가에 힘을 기울였다. 이와 같은 만주전전의 라디오 보급사업은 전파를 통해 국가의 경계를 명시하고 내부의 구성원들을 하나로 묶는 ‘국가 만들기’ 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라디오 보급 사업의 중심 대상은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국계(滿系)주민이었다. 중국계 주민들은 가장 많은 (잠재적) 청취자인 동시에, 만주국이 창출하고자 하였던 ‘만주문화’의 주역이라는 점에서도 방송이 반드시 포
섭해야 할 집단이었다. ‘만주문화’는 만주국이 독립국으로서의 자기 정당성을 획득하기 위해 필요로 했던 독자적인 대중문화로, 만주국을 구성하는 다양한 민족들을 아우르면서도 일본이나 중국과는 다른 문화여야 했다. 만주전전은 ‘만주문화’를 방송전파 위에서 실현하기 위해 중국어 프로그램의 제작에 힘을 기울이고, 각 지역별로 러시아어, 조선어 등을 중심으로 하는 다언어 방송정책을 펼쳤다. 이와 더불어 전통음악기록사업 등을 통해 ‘만주문화’의 내용을 채울 ‘만주적인 것’을 모색하였다. 그러나 복합민족국가 만주국에서 일본인의 지위를 위협하지 않으면서 그들의 문화와 구별되는 것을 만들어내기는 쉽지 않았다. 오히려 ‘만주문화’의 모색 과정은 제국 질서 안에 존재하는 독립국가 만주국의 딜레마를 뚜렷이 보여주는 사례가 되었다. 방송보급사업이 대내적인 ‘국가 만들기’사업이었다면, 조선 ․ 대만 등의식민지와 화북지역 괴뢰정권과의 연계 사업은 제국의 판도를 청각을 통해나타낸다는 점에서 대외적인 ‘제국 만들기’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만주전전의 대외 방송교류사업에는 제국 일본의 영역을 청취자들에게 감각적으로 인식시키는 동시에 제국의 근간인 일본(인)의 우위를 확립한다는 두 가지 과제가 주어졌다. 1941년 이전에는 내지(일본), 중국(화북), 조선 등지와 활발한 교환방송이 이루어졌다. 이들 지역과의 정례교환방송은 강연 프로그램이 중심이 되었으나, 임시교환방송에서는 음악 등 연예 프로그램이 중요시되기도 하였다. 또한 ‘만주문화 모색’이라는 측면에서 대내적으로 중국계주민들에 대한 방송보급이 중시되었듯이, 대외적인 방송교류사업에서는 화북 지방정권과의 교류가 중시되었다. 아시아 ․ 태평양전쟁이 본격화된 1941년 이후에는 제국 일본의 판도 전체를 잇는 방송 네트워크인 ‘대동아방송권’이 구상되었다. 이는 일본-만주-화북의 연계를 근간으로 식민지와 남양 군도 전체를 포함하는 개념이었다. ‘대동아방송권’의 실현을 위해, 내지의 지도 아래 각 지역의 방송국은 적극적으로 연계하여 교환방송은 물론 기술적 협력에 진력하였다. 만주전전은 ‘대동아방송권’의 일원으로서 동아전기통신협의회에 참가하였으며, 일본방송협회(NHK)가 주도하는 ‘동아교환방송’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미국과의 개전 이후에 더욱 적극적으로 이루어졌던 ‘동아교환방송’은 남양군도를 포함한 각 지역이 긴밀히 연계 ․ 협력하는 모습을 선전하는 동시에 네트워크의 정점에 있는 일본의 존재를 확고히 하는 것이었다. 비록 시간적 ․ 기술
적 문제 때문에 그 이상을 충분히 실현하지는 못하였으나, ‘대동아방송권’은 ‘동아신질서’가 방송전파의 차원에서 실현된 모습이었다.
결과적으로 만주국의 라디오 방송은 대내적인 보급사업에서도 대외적인교류사업에서도 만족할만한 성과를 내지 못한 채 패전을 맞이하였다. 그러나 ‘제국’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는 복합민족국가 만주국에서 라디오 방송이 어떠한 가능성을 가졌었는지를 생각한다면, 송신자(만주전전)와 청취자, 그리고 국가가 서로 뒤얽혔던 만주국 라디오라는 공간을 통해 20세기전반 국민국가와 제국의 모순을 드러내는 한 단면을 볼 수 있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만주국의 선전정책과 라디오 사업의 전개
  1) 만철·만주국의 선전정책과 라디오
  2) 만주전전의 설립과 라디오 방송의 전개
 3. 만주국의 방송보급과 ‘만주문화’의 모색
  1) 만주전전의 청취자 확대 사업
  2) 다언어 방송과 만주문화의 모색
 4. ‘대동아방송권(大東亞放送圈)’과 만주국의 라디오 방송
  1) 전파 네트워크의 구축: 연락ㆍ교환(交驩)방송
  2) 동아중계방송과 ‘대동아방송권’의 구상
 5. 맺음말
 參考文獻
 Abstract

저자정보

  • 강희주 Kang, Hui-Joo. 연세대학교 대학원 사학과 석사졸업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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