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정보
초록
영어
The region of the Northern China includes Tianjin, Hebei, Shanxi, Shandong, Henan and Beijing. The region was not only a main activity region of the Joseon Uiyeongdae but also an area where many korean independent fighters moved against Japan in the history of Korean independence movement. However, after the Sino-Japanese war in 1937, Korean communities that independent
activists formed around the 3. 1 independent movement in 1919 started to be deformed by Japanese power and pro-Japanese organizations. Like Tianjin, inner mongolia was also thought to be an 'utopia' to establish independent movement base in the 1920s but, after the war, it was not an ideal place any more. Korean community changed into a society to force submission to Japan in the middle of the japanese invasion and their resistance. Of course, some people could have a chance to assimilate into the korean mainstream after the independence. This paper is intended to discover period and regional features of Korean community in the Northern China.
First of all, Korean community before the Sino-Japanese war was organized by independent fighters. The center of the Northern China, Beijing and Tianjin were the places that Korean independent movement progressed most vigorously in whole China including Shanghai. And also, they were selected to draw Chinese corporation by Korean fighters. Koreans migrated there by uneasy situation of Manjuria and 3.1 independent movement and developed independent
movement. Most of them were poor. For example, one of the great independent fighters, Lee Hoeyeong was said that he was difficult to keep living even below subsistence level. It shows that many Koreans in the region should endure the position as 'homeless people'. On the other hand, their residential area was expanded to Da dong, Shanxi and Bao tou, Nei menggu. The main features of the community in the region after the Sino-Japanes war were the invasion of Japan and submission to it. As Japan occupied the region fast, Koreans also migrated and formed new residence there. But their residential expansion caused their submission to Japan. Appearance of little capitalists and the increase of illegal traders such as drug traffickers were much related to Japanese military industry. Korean organizations under the power of Japan or
Japanese organizations could not be free from Japanese influence. In particular, as the number of jobless people was growing, the community became changed into an unhealthy and distorted society.
한국어
近화북은 북경을 비롯해서 천진, 하북성, 산서성, 산동성, 하남성 등을 일컫는다. 한국독립운동사에서 화북은 조선의용대의 활동지였을 뿐만 아니라 이회영, 신채호 등을 비롯한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일제와 저항한 곳이기도 하다. 특히 1919년 3․1운동 전후 독립운동가들이 형성했던 한인커뮤니티는 1937년 중일전쟁으로 일본 세력의 부식과 그에 따른 친일단체의 성립으로 변형되었다. 천진뿐만 아니라 내몽고 지역도 1920년대 독립운동기지를 건설하고자 했던 ‘이상향’이었지만 중일전쟁 이후 더 이상 향기를 느낄 수없는 곳이 되었다. 침략과 저항의 한복판에서 한인사회는 또다른 굴종이강요되는 사회로 바뀌어 갔다. 물론 일부는 새로운 경험을 통해 해방 이후한국에서 주류사회에 편입되는 기회도 가졌다. 본 논문에서는 화북지역 한인사회를 시기별, 세부 지역별로 그 특징을 도출하는데 목적을 두었다. 먼저 중일전쟁 이전 시기의 한인사회는 독립운동 세력이 형성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화북지역 가운데 그 중심인 북경과 천진 지역은 상해지역을 비롯해 중국 관내에서 독립운동이 가장 활발하게 진행된 곳이며, 중국과의 협력을 이끌기 위해 선택된 곳이기도 하다. 그 유형은 만주지역의 정세불안과 3․1운동으로 국내에서 이주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한 유형으로 크게 구분해 볼 수 있다. 이들의 생활상은 넉넉한 편이 아니었으며, 심지어 대표적 독립운동가인 우당 이회영은 입에 풀칠하지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만큼 화북지역 한인들은 ‘망국노의 처지’를 그대로 감내해야 했다. 한편 북경과 천진뿐만 아니라 산서성 대동과 장가구, 내몽고 포두까지 거주지의 외연이 넓어지고 있었다. 중일전쟁 이후 한인사회의 특징은 한마디로 침략과 굴종이라고 정리할 수있다. 일제가 빠르게 화북지역은 점령하면서 한인들 역시 그 노선을 따라 거주지를 형성하였다. 하지만 일제에 의한 거주지의 외연 확대는 또다른 굴종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소자본가의 등장도 일제의 군수산업과 연계된 경우가 많았으며, 아편밀매와 같은 부정업자의 증가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일제의 세력권 안에서 또는 일제 기관의 영향 아래에서 운영되었던 한인단체들의 성격은 일제의 그늘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특히 한인들 가운데 무직자의 비중이 증가하면서 한인사회는 건강한 모습 보다는 왜곡된 형태의 한인사회로 정형화되어 갔다.
목차
1. 머리말
2. 중일전쟁 이전 한인이주
1) 한인사회의 형성
2) 거주지의 외연 확대
3) 생활실태와 직업구조
3. 중일전쟁과 한인사회의 변화
1) 화북정권의 성립과 한인사회
2) 직업의 차별화와 왜곡
4. 맺음말
参考文献
Abstra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