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정보
Education of Official Seowon in Honam(湖南) Province - Developments and Propagations of Confucianism by <Records of Jugsuseowon(竹樹書院)>
호남지역 서원의 교육활동 - 『죽수서원지』를 통해 본 유교교양의 수용 -
초록
영어
In Korea, the traditional institutions of confucianism remain through out the nation. Sungkyunkwan and hyanggyo, the Confucian temple and school to teach local students in the Joseon Dynasty period are the national institutions. Seowon is the private school.
This paper focuses on understanding situation and education of seowon.
Seowon had been the library and schooling space in previous Joseon Dynasty. However, it was of great importance as the space of the memorial service after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 Many seowon was built in 17th century and its main goals were memorial service and country's politics instead of education after all. Heungseon-Daewongun phased out seowon to prevent harmful effect from taking place, so only 47 seowon was left.
Seowon was rated very negatively and was supposed to a den of party strife, but historians studied seowon actively in 1970s,80s. Therefore, negative cognition of seowon was modified more than a bit. However, the studies of educational activity of it still lack in part of Chinese-education.
In this paper, I organize concrete examples of education activity in official seowon, which have data in Jeoun-Nam Province. This study indicates how developing confucianism in local community. The scale of Jeoun-Nam's seowon is smaller than Yeongnam's or Kiho's. Because of financial pressure, ‘Gujeop’ which means preparing for an classical examination system for the government service in old time Korea in seowon was less operated. While some Confucian scholars attended lectures in the first and the fifteenth days of the lunar month. This paper consider lecture of Jucksoo seowon in Jeoun-Nam province.
한국어
한국의 전통적 유교문화공간 중, 國公立의 成均館과 鄕校,그리고 私立의 書院은 모두 교육과 享祀의 역할을 담당하는 공간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고려시대와 조선초기의 書院은 주로 圖書館 및 교육의 역할을 담당하였지만, 주자학이 체제교학으로 자리 잡은 임진왜란 전후로 내려오면, 교육활동 외에 제향공간으로서의 비중이 높아졌다. 급기야 肅宗代에 이르러 京鄕 각지에 다수의 서원이 세워지면서, 교육과 藏修는 뒷전인 채 祭享과 향촌정치의 공간으로서의 성격이 강해졌다. 이후 書院濫設에 따른 폐해가 표면으로 부상되면서, 서원에 관한 평가는 부정적 시각이 주류를 이루고, ‘黨爭의 소굴’로 보는 인식도 자리 잡게 되었다. 하지만 70․80년대 들어오면 역사학계에 서원에 관한 연구가 활발해지고, 이런 연구에 힘입어 서원에 관한 부정적 인식도 상당히 수정되었다. 아울러 교육학분야에서도 교육제도로서의 서원연구가 진행되었지만, 구체적 사례를 통한 교육의 내용에 관해서는 아직 구체적인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상태이다.
이에 이 논문에서는 호남지역의 유교문화공간 중 사립교육기관인 書院의 교육활동을 竹樹書院誌를 통해 살펴보았다. 죽수서원은 전남의 화순에 위치하는 서원으로 1570(선조3)년 기묘사화로 능성현에 귀향와서 죽은 趙光祖(1482~1519)를 추모하는 공간으로 세워졌다. 書院誌를 통하여 서원의 운영임원진과 또 운영상 필요한 행동규범들을 알아보았고, 교육활동으로서 講會가 열리는 공간의 좌석배치도, 講會에 참가하는 諸生들의 준비과정, 그리고 강회에서의 집단교육체제를 고찰하였다. 특히 「相揖禮笏記」에 보이는 ‘告語’를 통하여 서원교육이 추구하였던 교육목표와 실천방안을 살펴보았다.
목차
1. 머리말
2. 호남지역의 유교문화공간
3. 竹樹書院의 현황
4. 죽수서원의 교육활동
5.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