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정보
Changes of Gayageum Byeongchang Performing Styles in SLP Records
초록
영어
This paper traces the information on the Gayageum Byeongchang from the SLP records. It focuses on the players, repertoire and its application of othere genre to reshape the transition aspects of the Gayageum Byeongchang throughout times.
The authentic lineage of contemporary Geyegeum Byoengchang includes Kim, Chang-Jo and Han, Suk-Koo. Both of them are from Jeolla provinces. It was aound 1927 when the release of the Geyegeum Byoengchang records got into main stream of record production.
Therefore, considering with a limited scope of the Gayageum Byoengchang records players, it is possible to conclude that the Geyegeum Byoengchang were present both in Chungcheong and Jeolla provinces. Though Pansori is no longer found in Chungcheong area nowadays, it must be true that Pansori was popular through 1939 in the region and the Geyegeum Byoengchang started earlier in Chungcheong provinces than in Jeolla provinces.
The number of Geyegeum Byoengchang recorded in SLP records reaches nearly 500 and the album continuously produced from 1932 to 1935 and the Geyegeum Byoengchang reached its peak during these four years.
With extensive popularity of the Geyegeum Byoengchang nationwide, more number of the Geyegeum Byoengchang players joined album recording in 1930s’. Oh, Tae-Seok and Lee, So-Hyang were the most active players. Kim, Juk-Pa, Kim, Jong-Gi, Jeong, Nam-Hee and Han, Seong-Gi emerged as prominent players in this period and they not only did album recording but also participated broadcasting. With these excellent artists, the Geyegeum Byoengchang relished its peak in mid 1930s’.
Though slight difference is found through times in the repertoire of the Geyegeum Byoengchang records, the overall range of repertoire stays within the five pieces of Pansori and Danga. Namdo Japka, folk songs of each region and Changgeuk were used for the Geyegeum Byoengchang from time to time. The repertoire of contemprary Geyegeum Byoengchang can be categorized mainly into three parts; Pansori, Danga, Sinminyo and this shows little discrepancy from the repertoire of Geyegeum Byoengchang contained in SLP records. It is still true, though, that the number of music pieces of each repertoire has been significantly reduced until now.
한국어
본 글은 유성기로 발매된 음반들 중 가야금병창에 관한 기록을 중심으로 이 시기 가야금병창 연주자를 비롯하여 가야금병창에 사용된 레퍼토리의 해당 장르․활용 등을 통하여 유성기음반에 나타난 가야금병창의 변모양상을 살펴본 논문이다.
유성기음반 가야금병창 취입 연주자는 강남중을 비롯하여 전체 36인이다. 가야금 병창 최초의 연주자는 1910년경 미국 빅타사 녹음의 박팔괘이다. 또한 유성기음반 초기 가야금병창 연주자로 심정순이 있다. 이 두 사람은 모두 충청권 출신의 연주자다.
현행 가야금병창의 계보에 해당하는 김창조나 한숙구 등은 전남 출신의 연주자인데, 남도권의 가야금병창이 본격적으로 발매된 시기는 1927년경이다. 따라서 유성기음반 가야금병창 연주자에 한하여 본다면, 이 시기의 가야금병창은 충청권과 남도권이 함께 존재하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현재는 전해지지 않지만 충청권의 판소리가 1939년까지 지속적으로 인기를 누렸음을 알 수 있으며, 남도권의 가야금병창보다 충청권의 가야금병창이 먼저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가야금병창 취입 곡은 거의 500여 곡에 이르며, 1910년을 시작으로 1940년까지 지속적으로 발매되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유성기음반 가야금병창 관련 음반 중 가야금병창 악곡이 가장 많이 나타나는 시기는 1932년부터 1935년까지이다. 따라서 유성기음반 시대의 가야금병창은 앞의 4여년이 가장 성행하였던 시대임을 짐작할 수 있다.
가야금병창의 음반 발매의 초기인 1910년대에는 주로 박팔괘나 심정순․심상건․ 김해선 등이 활약하였으며, 1920년대에는 심매향․심상건 등이 활약한 것으로 보아이 시기까지는 주로 충청도 출신의 심씨 일가와 김해선이 주류를 이루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가야금병창이 대중들에게 인기를 얻으면서 1930년대에는 많은 가야금병창 연주자들이 음반 취입을 하는데, 오태석과 이소향이 가장 활발한 활동을 한 연주자이다. 이외에 김죽파나 김종기․정남희․한성기 등의 연주자들이 부각되었는데, 이들은 음반 취입활동을 비롯하여 방송으로 크게 활약한다. 이들이 활약한 1930년대 중반이 가야금병창의 최대 전성기라 할 수 있다.
유성기음반에 녹음된 가야금병창 악곡은 시대적으로 다소 차이가 나타나기는 하지만, 판소리 다섯 마당의 대목이나 단가에서 크게 벗어나고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이에 덧붙여 서도나 남도의 잡가, 각 지역의 민요, 창극도 가야금병창의 악곡으로 활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현행 가야금병창의 경우 판소리, 단가, 신민요의 세 가지로 레퍼토리를 구분할 수 있는데, 장르적인 면으로 보아 유성기음반 시절과 크게 다를바는 없다. 그러나 각 장르에 속하는 세부 악곡의 수가 현행까지 현격이 줄어든 상태로 지속되고 있다.
목차
II. 유성기음반 수록 가야금병창 공연형태의 변모 양상
1. 가야금병창 연주자
2. 가야금병창 관련 곡목
III. 맺는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