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정보
초록
영어
This study reviewed the life of women in the aristocrat families in Joseon Dynasty through
한국어
본고는 숙종 비 인현왕후의 시누이인 연안이씨의 일생을 기록한 {이부인행록}을 분석하여 조선시대 양반가 여성의 삶을 살펴 본 것이다. 이부인은 17-18세기 서인–노론의 중추이자 외척이었던 여흥 민문이 기사환국 이후 정치적 피화(被禍)를 입고 남성가부장이 부재하는 공간에서 가문을 유지하고 번창케 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함으로써, 여흥 민문 사람들로부터 존경의 대상이 되었던 여성이다. 이부인은 삼종지도(三從之道)를 부녀자의 운명으로 받아들이면서도, {소학} {내훈} 등의 성리서를 읽고 성리학적 삶을 실천하고자 노력하였으며, 여성도 역사서를 읽고 역대의 치란과 흥망성쇠를 통해 식견을 넓힐 것을 주장하였다. 서책을 통한 세계관의 확대는 이부인이 기사환국 이후 여흥 민문이 수차례의 당화(黨禍)를 겪는 과정에서 정세를 파악하고 대처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17세기 중⋅후반 서울의 경화벌열들 사이에서 복식을 화려하게 꾸미는 사치풍조가 만연하였으나, 이부인을 비롯한 여흥 민문의 사람들은 검약을 숭상하고 사치를 경계하였는데, 이는 여흥 민문이 기사환국과 신임⋅정미환국 등을 겪는 과정에서 정신적 힘이 되었다. 이부인은 멸문의 위기 속에서 자녀들에게 학문에 전념하여 가문을 회복할 것을 강조하였으나, 과거에 급제하여 출세하기 위한 공부라기보다 옛 성현의 책을 읽고 성현의 도를 실천하기 위한 수기치인의 학문을 강조하였다. 17세기 이후 명문으로 부상한 여흥 민문은 가격(家格)을 유지하기 위한 문중활동으로 선영의 정비와 대동보의 간행, 종회(宗會)의 구성과 가사의 정리를 통해 친족을 결속하고 유대를 강화해 나갔다. 이 시기에 이부인은 김쌈을 상업(常業)으로 삼아 인현왕후를 봉공하고 조상의 제사를 받들었으며, 가족의 생계를 유지하며 가문을 보존하였다. 그녀는 ‘군자의 제례’로 불리던 여흥 민문의 제례와 내외종 7-8촌에 해당하는 친족의 접대 등을 담당하며 가문을 유지⋅발전시키는 중심적 위치에 있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이부인의 삶에 대한 자세
Ⅲ. 정치적 피화기의 가문유지 노력
Ⅳ. 집안관리
1. 봉제사
2. 친척관리
3. 자녀교육
4. 노비관리
Ⅴ. 맺음말
<참고 문헌>
Abstrac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