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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 9년(1631) 鄭澣 모반 사건과 그 의미

원문정보

Jeong Han's Rebellion in the 9th Year of King Injo's Reign(1631) and Its Meanings

인조 9년(1631) 정한 모반 사건과 그 의미

김우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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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영어

The rebellion of Jeong Han occurred in the 9th year of King Injo's reign (1631). Although it was a failure even in its conspiracy stage due to a report, it was significantly different in several aspects when compared to other rebellions during the reign when various treasons were frequent. First of all, the rebellion of Jeong Han was an event by combination of heterogeneous powers. Kwon Dae-jin, one of the middle people in Okcheon, Chungcheong-do, Yang Cheon-sik, a wandering intellectuals drifting along all the parts of the country, and Jeong Han and Park Hee-jip, remainders of Dae-buk power gathered to plan the rebellion, having prospects different from each other. As a combination of heterogeneous powers, the rebellion was related to other various rebellions in the past and affected many events in the future. Because this event occurred as an extension of the past rebellions by Yu Hyo-rip or Han Hoi, the barely-surviving Dae-buk power was thoroughly removed. From then on no rebellion under the power was found, and the rebellion of Jeong Han was the last one by the power. Given that the rebellion was by wandering power and was characteristic in using a symbolic person Choi Yeong, this rebellion was also similar to the event by Lee Chung-gyeong in the 7th year of King Injo's reign(1629). The symbol of Choi Yeong was again used in the event by Ahn Ik-shin in the 24th year of King Injo's reign(1646). However, what is most noticeable in this event is that it is related to Jeonggamrok, a book that began to be used fully as from the 18th century: the feng shui theory focusing on Mt. Gyeryong and the popular belief expecting the Jinin were reflected in the rebellion, which may be the substantial origin of Jeonggamrok. The fact that Jeong Han, who had the family name "Jeong," the Superior Man's family name in the prophetic book, was selected by the group of Yang Cheon-sik who was adept in feng shui and physiognomy may indicate an evidence for the presumption.

한국어

鄭澣의 모반 사건은 인조 9년(1631)에 일어났다. 실행에 옮겨지기 전에 모의 단계에서 고변으로 실패한 사건이지만, 이 사건은 각종 모반 사건이 빈발했던 仁祖代의 다른 사건과 몇 가지 점에서 의미 있는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먼저 이질적인 세력들의 결합에 의한 사건이라는 점이다. 충청도의 옥천에 기반을 둔 중인 계층의 權大進, 전국을 떠돌던 유랑 지식인 楊天植, 大北 세력의 남은 패거리였던 鄭澣과 朴禧集 등이 각각 서로 다른 전망 속에서 합세하여 모반을 계획하였다. 이질적인 세력의 결합인 만큼, 이 사건은 이전의 다양한 모반 사건과 연관을 맺고 있으며, 이후의 많은 사건에 영향을 주게 되었다. 柳孝立이나 韓會 등의 모반 사건의 연장선에서 발생한 이번 사건으로, 미약하게나마 존재하던 大北 세력은 철저하게 제거되었다. 이후 大北이 주도하는 모반 사건은 나타나지 않게 되며, 결국 이 사건은 대북의 마지막 모반 사건이 되었다. 유랑 세력의 거사라는 점, 崔瑩이라는 상징적 인물을 등장시킨다는 점에서 이 사건은 인조 7년(1629)의 李忠慶 사건과도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최영의 상징은 이후 인조 24년(1646)에 일어나는 安益信 사건에서도 반복된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 무엇보다 주목되는 것은 18세기 이후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鄭鑑錄}과의 관련 여부이다. 鷄龍山을 중시하는 풍수지리설과 眞人을 기대하는 민간 신앙이 거사 과정에 투영되고 있는데, 이는 정감록의 실체적 기원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異人으로 상정된 鄭氏인 鄭澣이 풍수와 관상에 능하다는 양천식의 무리에게 선택되는 과정에서, 우리는 그러한 추정의 근거를 찾을 수 있다.

목차

<논문 요약>
 Ⅰ. 머리말
 Ⅱ. 사건의 내용
  1. 사건의 배경
  2. 사건의 개요
  3. 관련 인물
 Ⅲ. 사건의 의미
  1. 사건의 성격
  2. 사건의 영향
 Ⅳ. 맺음말
 <참고 문헌>
 Abstract

저자정보

  • 김우철 Kim, Woo-cheol. 한중대학교 교양학부 교수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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