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傾蓋如故, 同氣相求 —洪良浩與紀昀交遊攷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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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개여고, 동기상구 — 홍량호여기윤교유고술

徐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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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한국어

홍양호와 기윤은 18세기 중후기에 각각 조선과 청조 문단에서 최고의 문인이며 사림의 숭앙을 받는 학자이다. 그들의 교류는 갑인년(1794, 정조18년, 건륭59년)에 홍양호가 동지겸사은정사의 신분으로 연경에 갔을 때부터 시작된다. 홍양호는 당시 청조 예부상서인 기윤과 만나 교유하였다. 그들의 교류관계를 고찰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첫째, 이것은 중국과 한국의 학술 대가들의 교유이다.
청조와 조선의 건국 이후 고층간, 높은 수준의 학술교류는 이것이 처음이다. 그러므로 이전시기의 중한 문인교류와 다른 특징을 나타낸다. 둘째, 그들의 교류는 한번의 만남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書信, 贈文, 贈詩 및 贈物 등의 빈번한 왕래를 하였다. 그들의 교류는 전면적이고 깊이 있게 진행되었다. 그들이 교류 중에 논술한 학술사상은 중한 관각문단의 학술경향을 대표한다. 그러므로 그들의 학술사상의 동이점을 비교하면 곧 당시 중한 학술경향을 파악할 수 있다. 이상의 두 가지 연구 의의에 근거하여 본고는 연대순에 따라 다양한 문헌자료를 종합하여 홍양호와 기윤의 교류를 상세하게 고찰하였다.
두 사람은 갑인년부터 무오년까지(1794-1798) 매년 편지와 시문, 선물 등을 통해 서로에 대한 우정을 전달하며 지속적인 교류를 하였다. 두 사람의 “傾蓋如故”한 감정은 知音을 얻기 어려운 것에 대한 감탄과 얻은 후의 기쁜 심정, 상대방에 대한 존경과 격려의 마음, 지음에 대한 그리움 등 세가지 측면에서 표현된다. 문학에 있어서는 창작의 목적, 창작의 동기와 취지, 문학 비평 등 면에서 서로 합치된 관점을 갖고 있다.
본고는 홍양호와 기윤의 교류를 고찰하여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어냈다. 개인적인 관계로 놓고 보면 두 사람의 교류는 성공적이다. 두 사람이 만년에 건립한 학술적 우의는 중한 관각 문인들의 교류의 모범이 되었다. 국가간의 관계로 본다면 18세기말 중한 양국의 관각 학술경향은 일치하였다. 즉 양국은 모두 전통적 유교를 회복하기를 희망하였다. 홍양호와 기윤은 모두 당시 최고의 문인 학자으로서 그들의 빈번한 학술교류는 개인적인 교유의 범위와 의미를 넘어 18세기 중한 관각학술의 최초의 진정한 교류라는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중국어

洪良浩與紀昀分別是十八世紀中後期朝清兩國文壇上享有盛名, 執學術牛耳, 為士林所宗仰的學者。 他們的交往, 緣於甲寅年(即1794年, 正祖十八年, 乾隆五十九年)洪良浩以冬至兼謝恩正使的身份出使燕京。 當時, 他與禮部尙書紀昀相識, 並展開交流。 攷述他們之間的交遊關係有着極其重要的意義:一方面這是中韓學術大宗師間的交遊。 清朝, 朝鮮立國後, 如此高級別, 高水平的學術交流, 這是首次, 因而, 它必然會顯示出不同以往中韓文人交流的特點;另一方面, 他們之間的交流不僅僅是一面之緣, 書信, 贈文, 贈詩和贈物等在他們之間往復頻繁, 他們的交流是全面而深入的, 中韓的學術火花在他們之間踫撞摩擦。 他們在交流中所論述的學術思想, 代表着中韓官方學壇的學術導向。 因此, 比較他們學術思想的異同, 即可把握住當時中韓學術的傾向。 基于以上兩方面的研究意義, 本文首先以年代為序, 綜合多方面的文獻資料, 詳細攷述了洪良浩與紀昀交往的過程。
從兩人的交遊經歷, 可以看出, 從甲寅年到戊午年(1794-1798), 每年他們都通過書信, 寄詩或贈物等形式向對方傳達惺惺相惜之意。 雙方“傾蓋如故”的情感主要表現為:一, 對知音難求的慨嘆, 以及求得之後的欣悅之情;二, 對對方的崇敬, 期勉之情;三, 是對知音的相思之情。
洪良浩有詩句云:“文章契遇自古難, 同氣相求非我衒。”稱自己與紀昀文章契遇, 同氣相求。 這正是兩人知己之交的最大特點, 也是與其他中韓文人關係的不同之處。 他們的“同氣相求”, 即對詩文之道的共同取向與高度契合, 對高尚人格的塑造, 是維繫二人情誼的基石。 兩人文學精神上的契合主要表現在三個方面:一, 就創作的目的, 兩人都對“文以載道”傳統的衰微感到痛心, 都指明文章當以載道為要, 於世有益;二, 就創作的動因和旨歸, 兩人都指出“情”, “志”為詩歌之原, “溫柔敦厚”乃是詩歌之旨歸;三, 兩人都主張評論文章, 獎掖人材當秉以公心, 反對門戶之爭, 地域之見, 認為 “文章之患, 莫大乎門戶”。
本文通過詳細攷述洪良浩與紀昀的關係, 得出結論:就人與人之間的個體關係而言, 洪良浩與紀昀的交遊是成功的, 其兩人晚年建立起來的學誼是中韓官方文人交流的典範。 他們二人年紀相同, 地位相當, 雖白首相交, 但相見恨晚, 情誼深重,可謂是“傾蓋如故”。 他們之間雖未有筆談記錄存留於今, 但以書信, 贈文, 贈物等形式展開的交流是深刻的, 尤其對文學之道, 儒家理想的理解和追求, 在他們之間形成了精神上的高度契合, 可謂是“同氣相求”。
就國與國之間的關係而言, 中韓兩國的官方學術傾向在十八世紀末期是一致的
即兩國都企望回復傳統的儒家之道, 其重要的載體就是詩文。 洪良浩與紀昀交往之時, 兩人皆是官方文壇的執牛耳者。 因此他們間深刻而頻繁的學術來往, 已經超越了個體交流的範疇和意義, 是十八世紀中韓官方學術第一次真正意義上的重要交流。

목차

【中文簡要】
 1. 引論
 2. 洪良浩與紀昀交往事蹟攷
 3. 兩人結交原因攷述
 4. 兩人“傾蓋如故”攷述
 5. 兩人“同氣相求”攷述
 6. 結論
 參考文獻
 【국문초록】

저자정보

  • 徐毅 서의. 南通大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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